2004년, 제천에 왔으니까 14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제천은 제 2의 고향이 된 셈이지요. 믿을지 모르겠지만 14년 만에 청풍에서 열리는 벚꽃 축제를 지난 화요일에 처음으로 다녀왔습니다. 그날이 아내 생일이었기에 외도하자는 마음으로 청풍 행을 택했습니다. 14년 동안 단 한 번도 벚꽃 축제에 다녀오지 않은 이유는 진해에서 살았기에 벚꽃에 대한 환상이 그리 크지 않은 것도 이유이겠지만, 그보다는 그렇게 바쁘게 지낸 세월이라는 말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장소에 도착해 보니 아직은 만발하지 않은 벚꽃들 때문에 축제 포스트가 한적하여 이곳이 축제가 열리는 장소가 맞나 싶을 정도로 썰렁했지만, 그래도 관광대절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고 약간의 차량 정체가 시작된 것을 보니 축제 중인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잠시 머문 14년 만에 처음 찾은 축제 장소가 시끄러운 소음들로 뒤범벅이 되어 있어 아내와 같이 장소를 고즈넉한 장소로 옮기기로 하고 찾은 곳이 그리 멀지 않은 정방사(淨芳寺)였습니다. 제천에 소재해 있는 사찰 중에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었고, 아내는 한 번 다녀왔던 곳이라는 말을 듣고 동선(動線)을 옮겼습니다. 역시 제천에 온 이후 처음으로 찾은 정방사는 생각보다 저에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선물을 선사했습니다. 사찰에서 내려다보이니 절경은 청풍호를 가슴으로 쓸어 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단어가 참 적절합니다. 쓸어 담은 절경. 거기에다 더불어 주어지는 사유함이 하나 있었습니다. 불교 승려들의 구도가 왜 정적일 수밖에 없을까에 대한 스스로의 답변 말입니다. 12월 31일에 경주에 가면 에밀레종을 타종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에밀레종소리를 유흥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에서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장중하면 맑기 어렵고, 맑으면 장중하기 힘든 법이건만 그 모두를 갖추었다.” 문제는 이 신비로운 소리를 사람이 엄청나게 몰리는 12월 31일 타종식 때는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소음이 소리를 잠식하기 때문입니다. 해서 언젠가 에밀레종소리의 신비를 느끼려면 사람을 피해 토함산 쪽으로 올라야 한다는 서울대 국악과 교수를 역임한 황병기 선생의 말에 동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난장의 소리로 소음 그 자체가 된 축제 장소를 피해 정방사에 올라보니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미치도록 아름다운 외로움의 고즈넉함을 느끼며 교리가 아닌 불교의 승려들이 추구하는 정적인 영성이 부러웠습니다. 가만히 가부좌를 하고 앉기만 해도 도(道)를 추구하는 자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줄 것 만 같은 그런 환경 때문에 말입니다. 지난 주간, 고난주간을 보냈습니다. 한 주간을 보내고 맞이한 부활주일 아침에 조용히 새겨보는 은혜가 있습니다. 무시무시한 말 폭탄들이 거침없이 투하되는 선거철, 자신은 살고 남은 죽이는 살인의 언어들이 난무한 오늘, 타인들을 살리고 나 또한 살리는 감동으로 새겨지는 말을 찾고 싶은 소망 말입니다. 정방사에 올라 무척이나 아이러니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기독교에서 우상으로 폄훼하고 있는 고사찰(古寺刹)에서 주님의 이 음성을 들었으니 말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피조하신 세계를 지배하고 계신 부활하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