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게 교회지. 장진영 집사의 셋째 영훈이가 지난 목요일, 오른쪽 팔꿈치가 탈골되는 사고를 당해 급히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부위가 신경이 지나가는 부분이라는 예민함이 있어 교우들에게 긴밀하게 중보 부탁을 했고, 마침 수술 시간이 장락 1셀 예배 시간과 겹쳐서 셀원들과 함께 긴급 기도를 드렸습니다. 함께 모인 지체들이 자신의 아들과 손자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났는데 지체들이 흘린 눈물이 보여 서로 휴지를 건네주며 마음으로 함께 함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기도의 시간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곧바로 병원으로 직행해 도착해 보니 마침 영훈이가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와 만났습니다. 마취가 풀려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며 울음을 터트린 영훈이를 보면서 안도의 여운이 몰려왔습니다. 걷는 것도 아기 같았을 때 만난 영훈이가 어엿 중학교 3학년이 되어 부쩍 컸지만 우는 모습으로 보니 그 어릴 때의 생각이 스쳤습니다. 엄마가 옆에 있어 어리광 같은 울음을 터트리는 영훈이를 보면서 아직은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은 모성이 지극히 필요한 아이의 모습에 도리어 안심했습니다. 위로 기도를 해주고 서울 심방을 위해 병실을 나서며 김문숙 집사께 중보해 준 셀 원들에게 수술 결과에 대하여 귀띔해줄 것을 당부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어간, 단체 톡 울림소리가 빈번하게 들렸습니다. 마침 아내가 운전을 해서 톡에 들어가 보니 셀 원들과 함께 나누는 김문숙 집사와의 진정어린 사랑의 메신저들이었습니다. 중보기도에 대한 감사, 무사히 수술이 끝난 것에 대한 안도의 위로의 덕담들로 톡 메시지가 넘쳐났습니다. 수술 그 다음 날까지 영훈이 안부를 묻는 메신저들이 다시 단체 톡에 남겨지는 알림 소리들로 수북해지는 것을 보면서 이런 행복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훈이가 복덩어리가 되었다고. 본인은 어른들의 진심 어린 중보의 힘을 얻었고, 더불어 셀 원들의 사랑을 함께 확인하는 중간 다리 역할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근래, 하나님 교회에 울음소리들이 들립니다. 새벽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그 동안 살지 못한 것에 대한 참회와 가슴 침, 그리고 새로운 삶의 결단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울음이, 지역 셀들에서는 지체들이 영적 가족의 멤버십으로 연대하여 희비(喜悲)를 함께 나누는 사랑의 울음이, 교회 공예배에서는 말씀의 감동을 받고 말씀이들리는 이런 솟구치는 감격이 나에게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의 울음이, 주의 종은 근래 제천 땅에 이리저리로 흩어져 있는 가나안성도(?)들에 대한 엄청난 부담감으로 인해 그 영혼들을 바라보며 스프링크니조마이(내장이 끊어지는 아픔)의 울음이 있습니다. 일련의 일들을 경험하면서 목사로서 느끼는 소회가 진하게 토로됩니다. “그래, 교회가 이래야 교회다.” 여행 작가 김현길이 쓴 ‘드로잉 제주’에서 저자가 황우치 해변을 보면서 밝힌 감성 깊은 이런 글이 담겨 있는데 읽다가 참 따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나보다 더 크게 울어주는 바다가 있다./온몸으로 아프게 부딪치는 파도가 있다./그들이 전해주는 무한한 위로가 있다.” 글을 만났을 때, 감정이입이 되어서 아주 깊이 공감했었지만 그럼에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체들이 함께 울어주는 울음을 어찌 울어주는 제주의 바다의 울음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해서 교우들의 맑고 유리구슬같이 초롱초롱한 사랑을 보면서 또 한 번 이렇게 새겨봅니다. “그래, 이게 교회지, 이게 교회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