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앨범

제목우리 언니 영애!!!!2024-05-22 16:41
작성자 Level 10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어도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선민, 선영 집사님처럼 구분이 안되는게 아니라  우리는 자매라고 해야 자매인줄 안다.
생김새와 키 뿐 아니라 모든 것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데  1년 차이로 같은 학교를 다녀서 나는 엄청 피곤했다.
왜냐고~~~~

우리 언니 영애는
별명이 "국정교과서"였다.
학교 두발 규정이 귀밑 1cm 면  1cm를 넘은적이 없다.
초등학교 부터 대학 졸업까지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다.
계속 같은 학교를 다닌 나는 학교에 내야하는 돈을 한번도 부풀려서  더 받아내지 못했다.
착실한 언니 덕에....
만약 학교에 내야하는 돈이 4500원이면 아버지는 나에게는  정확히 4500원을 주시고 언니는 만원짜리를 주셨다.
왜냐구~~~
나는 4500원을 주어도 끝이고 만원을 주어도 끝이었으니까.
하지만 언니는 필요한 돈만 쓰고 거스름 돈을 항상 정확히 가져다 드렸으니까....
공부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언니는 매사에 착실했다.
학교가 마치면 나는 제천 시내 곳곳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다녔고 언니는 바로 귀가했다.

언니의 대학 입시 연도가 1980년인데,
그 한 해만 "체력장' 기준이 달라서 윗몸 일으키기가 1분에 57번이 만점 기준이었다.
언니는 매일 공부를 마치면 집에서라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을 했다.
그래서 결국은 1분에 57번을 해냈다.
체육 선생님께서 전교생에게 본받으라고 방송을 하실 정도였다.

그 당시 제천 여고에서 공 들여 키운 학생 이영애,
전교에서 한명.
제천여고 대표로 '이화여자대학교"에 본고사를 치르러 갔다.
밖에서 기다리며 엄마는  언니가 떨어 질 줄 알았다고 했다.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과외비가 얼마...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언니는 그 당시 제천 사는 모든 아이들 처럼 학교만 열심히 다녔으니까....
내신 제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본고사도 치르던 때였으니까....

암튼 1차 시험에 떨어지자 언니는 재수를 해 보겠다고 했다.
대성 학원을 찾아가서 입학 허락을 받고 나오는데 엄마는 그 어두운 곳에 내딸을 둘 수 없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어 2차 시험을 치르게 했다.
얌전한 여학생들이 모여있는 "상명여자사범대학"에 합격한 언니는 그 곳을 다닐수 밖에 없었다.

대학에서도 내내 과 수석을 했던 언니는
교수님의 만류를 뒤로 하고 졸업과 동시에 시집을 갔다.

시집을 가서도 맏딸에 맏며느리 역할,
요즈음은 그것도 모자라 조카들의 엄마노릇까지 하느라 힘이든다.


이정희 09-10-06 12:17
  집사님!
수재집안이시네요.
아버지 장로님의 기도의 열매가 아름답게 맺힌 결과라는거 너무도 확실해서
지금 저 떨고있어요. 두렵고 감격스러워서요.
집사님의 일치월장할 믿음이 기대가 되고요.
세인의 중심일군이라 확심하기에 너무도 든든하고 예뻐요.
사랑합니다
정찬호 09-10-06 18:44
  보통,, 부모가 자식 자랑을 하곤하는데.. 언니 자랑하시니 어색하네요.^^
저는, 울 형 욕하고 다녔는데요.. 절 하도 괴롭혀서 ㅡㅡ.

울 형이 군대 갔을 때가 가장 좋았고, 말뚝박고 군바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님이 면회 간다고 했을 때, 역시나 전 안 갔는데, 울 형이 전화를 하대요..
제가 보고 싶었는데 왜 안 왔냐고 흐느끼면서...

대학교 다닐 때, 돈이 없어서 형한테 전화했는데,, 자기도 돈이 없다고 현금서비스를 해서 주려고 하더군요...
그 때 생각했습니다.
내게 형이 있어 좋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영미 09-10-06 19:02
  정집사님,
제가 언니 자랑하는거로 보이세요.....
잘난 언니 바로 밑에 학년으로 같은 학교를 다니느라 제가 얼마나 힘들었겠냐구요.

지금까지 우리 집에서 속썩이는 건 저구요
우리 집 첫 외박한 사람도 저구요~~

암튼 잘난 언니 바로 밑에서 엄청 괴로웠어요.
정찬호 09-10-06 22:19
  이영미 집사님, 그래도 집사님은 세인교회에 에이스입니다~
이선영 09-10-07 16:02
  영애 권사님이죠??
같은 교회 다닐때 제가 청년이었는데 참 열심히 사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같이 중고등부 사역했던 것도요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으로 섬기는 모습 넘 아름다워요
암튼 넘 보고싶네요
이영애님과 이영미님도 자매로 보이세요
 영미집사님 잘하는 언니덕에 학창시절 괴로웠겠어요 ㅎㅎㅎ
그래도 두 분다 멋지게 열심히 사시는 것 보기좋아요
두 분 다 화이팅!!!
이영애 09-10-07 18:48
    샬롬!  글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ㅎㅎㅎ~  "  우리 영애" 가 아니라서.
사실 고지식한 저 때문에 이영미 집사가 피곤하게 학교를 다녀야했습니다. 전 그냥 <공부만 잘했습니다.> 이 영미 집사는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명랑쾌활 소녀였고, 소풍을 가거나 운동회를 하면 늘 앞에 나서 사회를 보거나, 리드를 했습니다. 대학때도 학교 신문 <학보>의 기자이기도 했답니다. 미리 예비하시는 주님이 이렇게 세인에서 쓰시려고 하셨나봐요.
이 영미 집사의 섬김과 활동을 기대하며, 위하여 기도합니다. 
이강덕 09-10-08 10:56
  자매들의 사랑의 주고받음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권사님.
요즈음에 이영미집사님때문에 종이 얼마나 행복한지요?
'바로 이 때를 위함이라'고 에스더에게 말한 모르드게의 권면이 이집사님에게 정확하게 적용되고 있어 행복합니다.
이권사님의 지속적인 중보가 있을 것을 믿습니다.
주 안에서 이렇게 귀한 교제가 이루어지기를 종은 기대합니다.
사랑합니다.
홍훈표 09-10-13 07:34
  이영미집사 보증하는 사람 여기있어요.

말은 그래도 학창시절엔 명랑활달 소녀 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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