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
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
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
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
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
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
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내 나이 열아홉.
서울이라는 큰 도시로 진출해 이리저리 부딪치며 살아갈 때 나를 울린 글들이 있었다.
황동규의 시집 <삼남에 내리는 눈>, 이외수의 소설 <들개>
황동규의 시집 중에서 특히나 내가 좋아했던 시는 “즐거운 편지”이다.
세상을 살 때 사랑하며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던 나이.
사실 사랑보다 기다림이나 사랑의 종말, 사랑의 무모함을 더 사랑했던 것 같다.
-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이런 구절들에서 오는 무모한 사랑이나, 막막한 사랑의 부재에 대한 열망들에 공감했다.
거기에서 끝나야 했다. 좋아하는 것으로......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별이 아름다운 것이지 너무 가까워서도 너무 멀어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겁도 없이 시를 배우겠다고 황동규 시인이 강의하는 당시 중앙일보사에서 운영하는 중앙문화센터에 덜컥 등록을 했다. 시를 배우러 다니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열아홉살에 보고 감동을 받았던 시 “즐거운 편지”를 황동규 시인은 18살의 나이에 써서 발표를 했다는 것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 그 중 시를 쓴다는 것은 천재만이 할 수 있는 일이구나 하는 절망만 배우고 돌아섰다. 황동규 시인의 아버지가 황순원이라는 우리 문학계의 거목임을 안 후에는 더욱 아무나 시인이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사실만 확인했다.
전공이 아닌 상태에서 글을 조금 잘 쓰는 것이 좋은 것임을 깨달았으면 그것으로 그만 두었어야 했다. 그런데도 미련을 못 버리고 국어국문학과에 다시 입학을 했다. 같은 과에서 나와 서로 1,2등을 다투던 친구가 컨닝을 하다 들켰다. F학점을 면하려고 컨닝을 했다면 밉지 않았을 텐데 장학금을 받으려고 컨닝을 하다니 그 친구가 미웠다. 그런데 그랬던 친구가 3학년 때 덜컥 “시”로 등단을 했다.
미운게 아니라 미치는 줄 알았다.
이후로 시 쓴다는 생각을 다시는 하지 않기로 했다.
요즈음 나는 꼭 이렇다.
별
-김영승
우리는 이젠
그동안 우리가 썼던 말들을
쓰지 않을지 모른다.
사랑한다는 말
외롭다는 말
그리고
그립다는 말.
밤이면 기관포처럼
내 머리로 쏟아지는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