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8일 월요일 성서 일과 묵상 살아내 보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기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119:81-88, 에스겔 2:8-3:11, 고린도후서 11:16-33, 시편 21편, 사무엘하 5:1-10 꽃물 (말씀 새기기) 고린도후서 11:23-27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마중물 (말씀 묵상) 2016년에 바울의 전도 여정을 따라나섰다. 교회를 개척한 이후 첫 번째 안식년 휴가를 받아 은혜의 여정을 참여했다. 튀르키에 여정을 소화하는 동안 에어컨 시스템이 잘 완비된 45인승 리무진에 몸을 싣고 나는 타우르스 산맥을 두 번 넘었다. 차창으로 보이는 올리브 나무의 장관, 식용 양귀비의 도도함, 한 무리의 양 떼를 치는 촌로의 모습에 흠뻑 젖어 행복을 만끽할 찰나, 가이드의 소리가 들렸다. “여러분, 산길이 험하죠? 타우르스 산맥은 원래 거칠기로 악명이 높은 산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읽는데 멀미가 났으니 말이다. 굽이치는 도로를 따라 리무진 버스는 타우르스를 넘어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다시 가이드가 또 소리를 냈다. “우리는 지금 이 험한 타우르스를 편하게 넘어가고 있지만, 바울은 걸어서 이 산맥을 넘었습니다.” 타우르스를 도보로 넘은 바울 가이드를 말을 듣는데 오늘 성서 일과가 문득 떠 올랐다.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입이 열 개라도 바울이 감당했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동참하기에 대해 할 말이 없다. 혹자들은 바울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갈릴리적인 삶을 교리적으로 둔갑시켜 예수를 신격화하고 교회를 교조화한 가장 질 나쁜 행위를 한 자라고 혹평한다. 뭐 그러라면 그러라지. 신발이 헐거워지는 수고를 감내하며 타우르스를 넘어 보지 않은 자들의 말은 설득력과 신앙적 삶의 감동과 이원화되어 있다. 살아내 보지 않고 말하는 것은 대단히 교만한 일이며, 건방진 일이다. 나는 고급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싣고 편안하게 타우르스 산맥을 넘으면서 결기했다. 행하지 않고 말하는 경거망동과 교만한 행위의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이 은혜를 다시 한번 상기하게 해준 오늘 성서 일과는 내게는 날마다 곱씹어야 하는 잠언이다. 두레박(질문) 행하지 않고 말하는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가장 위험하고 해롭기까지 한 범죄는 교만함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다시 곱씹는다. 살아내지 않은 것을 말하지 않기로.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오늘도 높임을 받으셔야 할 주님, 이번 주간에도 여전히 엎드리겠습니다. 종의 기도로 인해 세인 공동체 지체들이 힘을 얻게 해주십시오. 잘 살아내는 한 주간이 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