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가 사상적으로 존경하는 유대인 랍비이자 철학자인 아브라함 조슈아 헤셀이 말했습니다. “성서적 종교의 핵심은 인간에게 쏟으시는 하나님의 관심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그렇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부여되어 있는 책임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헤셀, “누가 사람이냐”, 한국기독교연구소, 96.) 정말로 이것보다 더 소중한 종교의 목적이 있겠습니까? 기독교적인 언어로 바꾸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이라는 여행을 기쁨으로 가는 이유는 왜 나를 하나님이 이토록 사랑하셨지! 에 감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집중하셔서 쏟으신 그 사랑에 감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추구하는 신앙의 요소는 하나님이 수단이 아니라 나의 목적이심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목적이라는 것을 잃어버리는 순간, 나는 도리어 그 반대급부인 하나님이 내 삶의 수단이 되어버리는 최악의 종교주의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3월 28일 세인교회 고난주일 설교 중에서) 우리 교회는 대학에서 의상디자인 학과를 전공한 지체가 있다. 그녀는 절기가 되면 강단에 그 절기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조형물들을 만들어 교우들에게 감동을 준다. 일차적으로 만든 고난주간 조형물이 맘에 안 찼던지 다시 고난주일 하루를 앞두고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는 강단 장식을 세팅했다. 주일 설교 중에 지체의 수고를 격려하면서 교우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최주현 집사께서 교우들에게 고난의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강단에 세팅한 귀한 장식을 보시면서 은혜를 받으셨을 줄 압니다. 너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주신 최 집사님의 수고를 격려하며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잊지 마십시다. 우리가 십자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십자가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십자가에 나를 위해 선혈이 낭자한 보혈의 피를 흘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달리셨기에 때문입니다.” 198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센트룸 라이(Centrum Rai) 회관에 모여 있는 5,000여명의 순회전도자들 앞에 70세 고령의 찬양 가수가 섰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강단에 선 그는 자신이 작곡한 찬양을 하나님께 올렸다. I’d rather have Jesus than anything this world affords today. (이 세상이 오늘 감당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오히려 예수님을 원합니다.) 나 또한 찬송가 94장을 만든 베벌 세어가 원했던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보이는 고난주간이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