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사기 13:2-7 제목 : 엎드림을 잊은 것이 비극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23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비옥한 땅 소라라는 곳에 마노아라는 남자가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추측하기로 그는 비옥한 땅에 살고 있었기에 경제적인 궁핍함과 곤비함이 없는 삶을 살았지만 이들에게 한 가지 유감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본문 2절은 그 유감을 자녀가 없었던 것으로 기록합니다. 사사 시대를 비롯하여 구약 시대는 자녀가 없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기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이들 부부에게도 자녀가 없었던 것은 아마도 아쉬웠던 일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 부부에게 이 아쉬움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었던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임신하지 못하고 있는 마노아의 아내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찾아 온 것입니다. 그리고 찾아온 여호와의 사자는 그녀에게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을 고지합니다. 더불어 아들을 낳은 뒤에 이 아들은 나실인이 될 것까지 고지해 준 줍니다. 당연히 태어날 아들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고,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게 하지 말며, 부정한 것을 만지게 하지 말라는 등의 양육 강령까지 지시해 주었습니다. 본문 5절을 보면 앞으로 이렇게 나실인으로 태어날 아들은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역자가 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여기까지는 본문을 이해하는 설교자로서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허나 설교를 준비하면서 왠지 모를 찝찝함이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여인들 중에서 본문에 나오는 마노아의 아내처럼 태가 열리지 않아 마음고생을 한 비슷한 여인의 예를 든다면 아마도 라헬과 한나가 대표적인 동질의 인물일 것입니다. 그러나 태가 열리지 않아 자녀가 없었다는 점은 공통분모일 수 있겠지만, 이 두 여인과 본문에 등장한 마노아의 아내는 아주 다른 면이 있습니다. 라헬이나 한나는 자식이 없음을 한탄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던 반면, 마노아의 아내는 전혀 하나님께 자기의 태가 열리지 않음에 대하여 원통해 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극명한 차이는 라헬과 한나가 하나님께 간절하게 태의 열림을 위해 기도하였다는 것과 마노아의 아내는 전혀 기도하지 않았다는 차이를 결론으로 도출합니다. 한나의 그 유명한 기도의 격정을 소개하고 있는 사무엘상 1:15-16절을 표준 새 번역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한나가 대답하였다. 제사장님, 저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슬픈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서, 저의 마음을 주님 앞에 쏟아 놓았을 뿐입니다.” 유진 피터슨도 이 부분을 동일하게 메시지 구약 역사서에서 선포하였습니다. “그저 제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 놓았을 뿐입니다. 저를 나쁜 여자로 여기지 마십시오. 너무나 불행하고 고통스러워 이제껏 이러고 있었습니다.”(메시지 역사서 1:16절) 한나는 주님만이 본인의 태를 여실 수 있는 분임을 믿었기에 그녀는 하나님께 자신의 소원을 쏟아 놓은 것입니다. 너무 당연한 기도이며 외침이자 엎드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마노아의 아내는 전혀 이런 몸부림이나 엎드림이 행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주님께 태를 열어달라고 쏟아놓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왜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 하나님을 찾지 않았던 것이 상식이었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태어날 당시의 사사시대는 영적으로 하나님을 잊은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잊는 자들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았던 이 시대의 이들 부부는 그냥 전적인 은혜로 아들 삼손의 탄생을 맞게 되는 얼떨결의 주인공이 된 셈입니다. 지난 호에서 살폈던 것처럼 입산, 엘론, 압돈 소 사사 25년의 치리가 끝난 뒤에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는 기다렸다는 듯이 집단적인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이스라엘을 블레셋에게 넘기셨습니다. 사사 역사를 통해 가장 최장 기간인 40년 동안이나 고통을 받게 하셨습니다. 적어도 이 정도가 되면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 정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소 사사 시대를 접고 삼손의 시대로 넘어가는 기간에 이스라엘은 구원의 요청을 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흑암이 짙게 드리워진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코로나 바이러스 19라는 전무했던 질병의 공격이 짙게 드리워진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다시 되새김질해야 하는가를 필자는 근래 묻고 있습니다. 묻고 또 물으면서 나름 영적인 정리가 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다시 하나님께 엎드려야겠다고. 하나님을 찾지 않는 시대, 그것이 상식으로 자리매김한 시대, 그 시대가 오늘 코로나 19가 공습한 이 땅 대한민국인 것 같아 다시 맹렬히 하나님께 엎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다시 이 땅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