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 교회 지체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문안 인사를 드립니다. 벌써 교우들을 예배당에서 만나지 못한지 3주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금년은 제가 1987년, 서울신학대학교의 교문을 나선 지 33년이 되는 해입니다. 목회 현장에서 사역을 감당한 33년의 세월 중에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교회 공동체 예배 중단이라는 이 기가 막히고 참담한 현실을 마주치고서는 정말로 어떻게 하는 것이 목사로서 지금 현실에 부합한 일이며 합당한 처사를 행하는 일인가를 두고 매 시간 고민하고, 아파하며 지난 3주를 달려왔습니다. 그렇게 달려온 지난 3주의 시분초는 참 견디기 어려운 여정이었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더 얼마나 이 참담한 현실을 버텨 내야 하는지 가늠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다만 주군 되신 하나님께서 이 사태를 종식시켜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따름입니다. 사랑하는 세인 교회 교우 여러분! “듣도록 창조된 인간은 듣기를 잘못하고 들은 것은 나름대로 해석함으로 기준점이 모호해진다.”(강응섭, “라깡과 기독교의 대화”, 새물결플러스,2018년,p,322.) 프랑스 출신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마리 에밀 라깡의 말입니다. 동의합니다. 그래서 목사가 된 이후부터 잘 들으려고 매우 노력하며 달려오려 했습니다. 가뜩이나 잘 듣지 않는 것이 인간의 속성인데 그 오류를 조금이나마 줄여보려고 몸부림쳤다고나 할까 뭐 그런 셈입니다. 특히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펜데믹이 선포된 지구촌에 임한 재앙은 최고의 과학주의의 우상을 섬기고 있는 인간의 초라함을 여지없이 드러내게 한 우울한 인간 보고서가 될 것이 자명합니다. 그런데도 주님의 말씀하심을 내 멋대로 듣고 해석하려는 교회 안팎의 설왕설래를 목도하면서 애처로운 연민의 마음까지 들 정도입니다. 교회는 지금 최고의 영적 펜데믹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주일 예배는 조금 과장하면 역설적으로 신성불가침 즉 하나님도 어쩌지 못하는 한국교회를 사수하게 한 최후의 무기였습니다. 헌데 이 무기가 코노나 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녹슬어 가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쏟아지는 비난을 피할 수 없고, 안 드려도 목사의 마음은 만 갈래로 찢어지는 자기 스스로의 비난으로 인해 사면초가의 형국입니다. 그러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엎드림 말고는 없어 매일 새벽에 주군께 간구하는 유일한 기도의 아딧줄을 붙들고 있습니다. 어제는 시편 118편을 순서에 따라 묵상했습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시 118:6-9)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펀이 되실 때 사람이 어찌할 수 있겠는가 반문하는 시인의 노래가 종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의지하는 것보다 낫다고 선포한 신앙의 선배는 나를 격려해 주는 최고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세인 교회 교우 여러분! 내일은 인터넷 실시간으로 주일 예배를 드리는 세 번째 주일입니다. 주일마다 사랑하는 여러분의 얼굴을 맞대고 ‘이렇게 좋은 날’을 노래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세인 지체들이 영적인 지구력을 갖고 은혜의 자리에서 주일 예배의 감동을 함께 나누며, 오프라인 예배의 열림을 중보 할 줄로 믿습니다. 그 동안 너무나 당연했던 성도 공동체의 나눔, 섬김, 교제, 예배드림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셨던 전적인 은혜였다는 사실을 더 뼈저리게 체감하는 가족 예배를 드리는 주일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고라 자손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그토록 꿈에 그리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던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 이렇게 탄식하며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시편 42:1-4) 20세기 최고의 변증학자 CS 루이스는 시편 42편의 시인이 가졌던 마음을 ‘하나님을 향한 식욕이 왕성했다.’고 표현했는데 시의적절한 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쪼록 담임목사는 우리 세인 지체들이 맞는 3월 15일 주일예배를 통해 이 간절한 식욕이 불타오르는 주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조금만 더 견디십시다. 조금만 더 참으십시다. 이번 기회가 당연했던 예배의 감동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체휼하는 역설적 은혜의 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월 15일 주일이 은혜가 충만한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