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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크리스천 연합 신문 27번째 기고문2024-06-05 11:21
작성자 Level 10

본문 사사기 6:25-27

제목 먼저 해야 할 것

 

본문 25-26절을 보십시다.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또 이 산성 꼭대기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아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하시니라

우여곡절 끝에 미디안과의 싸움에 사사로 부름 받아 출정하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총 다섯 가지의 명령을 감당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요약하면 아버지 소유의 둘째 수소를 취하여 번제를 드리되 그 제사의 장소를 바알을 섬겼던 장소에서 하고번제에 쓸 재료는 나무로 만든 아세라 상을 찍어내어 그것을 땔감으로 사용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이 명령 안에 담겨 있는 성서 신학적 성찰을 생각해 보십시다하나님은 왜 첫째 수소가 아니라 둘째 수소를 취하라고 하셨을까본문에 둘째 수소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쉐르’ 는 통상적으로는 두 번째’ 의 의미를 갖고 있지만더 중요한 문자적인 의미는 ‘excellent, predominant’ 즉 뛰어난탁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즉 우상 숭배자인 너의 아버지 소유물 중에 바알 신에게 바치려고 했던 가장 상태가 뛰어난 제물을 바알이 아닌 나를 위해 준비해 놓으라는 명령이었습니다또한 허물라고 명령한 바알의 단은 요아스의 사설 단이 아니었고 아마도 오브라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섬기던 공동체 소유의 단이었기에 그것을 허무는 것은 기드온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었을 것입니다동시에 단 곁에 있는 아세라 상을 찍어내 그 재료인 나무로 번제의 재료를 사용하라는 명령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명령이었습니다오브라는 바알과 아세라 숭배의 중요한 진원지였기 때문입니다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은 어는 것 하나 녹록한 명령이 없었습니다그러나 현실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해서 기드온이 선택한 방법이 본문에 보입니다본문 27절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에 기드온이 종 열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10명의 동역자들과 함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언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밤에 행하니라.’ 로마대학교 부설 근동 연구소 교수로 일하고 있는 알베르토 소긴 교수는 자신의 주석인 판관기 주석에서 바알과 아세라 단이 위치해 있었던 곳을 가리켜 요새화된 가나안 성소라고 정의했습니다.(소긴국제성서주석, “판관기”,p,183.) 결코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던 그 장소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밤을 택했다는 것은 그래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이상의 본문 해석을 통해 이제 독자 여러분과 제가 함께 던져야 할 질문을 제기해 보며 교훈을 추론하고자 합니다왜 하나님은 부름에 응답하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던 기드온에게 이제 출정을 앞두고 이런 녹록하지 않은 명령을 내리셨을까의 문제 제기입니다저는 이 질문의 답을 이렇게 자답하고 싶습니다.

성도가 제일 먼저 진짜 승리를 위해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내 신앙의 추스름임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미디안과의 싸움은 어차피 기드온과 그의 병력을 통해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습니다즉 물리적군사적 우세로 인한 승리의 싸움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이미 알다시피 전적인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인한 승리였습니다.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대하 20:15절 하반절)는 말씀대로 미디안과의 전투도 하나님이 개입하셨기에 이긴 싸움입니다결국하나님이 이미 이루어 놓으신 승리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그렇다면 주목할 것은 하나님이 기드온을 도구로 삼아 이기게 하신 명분입니다그것은 기드온의 신앙적 추스름이었고그 동안 바알에게 향했던 불신앙을 하나님께로 향했다는 영적 전환이었음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사랑하는 독자 여러분그렇습니다성도가 승리를 위해 먼저 행하여야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를 성찰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일체의 신앙적 출발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이것이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입니다이 성찰함에 있어서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독자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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