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9년 11월 3일 (첫째 주) 지역 셀 사역2024-04-23 17:04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우리는 운동선수가 부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경기를 마치는 경우를 봅니다. 이때 우리는 그 선수의 부상을 ‘영광의 상처’라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이러한 영광의 상처를 볼 때 여러분의 감회는 어떤가요? 여러분에게 이런 ‘영광의 상처’가 있다면 함께 나누어봅시다.  

 
경배와 찬양 (WORSHOP)


●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복음성가: 예수 인도하셨네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 스티그마(8)
● 본문 : 갈라디아서 6:17
1) 바울을 괴롭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⓵ 갈라디아서를 통해 설명해봅시다.
⓶ 사도행전 20:30-32절을 통해 설명해봅시다.  

2) 바울은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⓵ 본문 후반절을 통해 바울이 가진 것을 찾아봅시다. 또한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봅시다(고후 11:23-27).
⓶ 바울에게 흔적 생긴 이유와 관련하여 흔적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3) 적용하기
⓵ 설교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⓶ 깨달은 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행 14:22 참조)  

 
사역하기 (WORK)
주간 중보기도

1) 11월 사역 전반을 위하여
2) 각 지역 셀에서 섬기고 있는 태신자들이 금년에 결실을 맺도록
3) 환우들을 위해
4) 대학 수학능력 시험 수시 및 정시를 진행 중인 수험생들을 위하여    (이한빛 신예찬 김혜원 정영민 정윤서 우혜민)
5) 담임목사의 사역을 위해 (대학원 강의, 후반기 사역의 승리 등) 


셀 사역

1) 새벽예배에 리더들 자원함으로 드리기
2) 공 예배 준수하기
3) 셀 원들의 범사 파악하여 중보하기
4) 셀 예배 책임감을 갖고 진정성이 있게 드리기
5) 리더와 인턴을 위해 중보하기
6) 추수감사절 준비 하기
7) 담임목사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기  

 
설교요약 (SUMMARY)
설교 요약
본문 : 갈라디아서 6:17
제목 : 스티그마 (8)   

  서론)
  기독교 고전문학인 단테의 신곡은 종교적인 상상의 나래를 글로 표현한 작품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곡의 패러다임 자체는 말도 안 되는 전형적으로 문학자가 만들어낸 상상의 작품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신곡 저술의 패러다임은 적어도 히브리서 9:27절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또한 요한복음 5:28-29절을 착안하여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 날이 임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우리는 흔히 종말론적인 신앙이라고 명명합니다. 종말론적이라고 표현하면 으레 갖게 되는 선입관이 지성적이지 못한 태도, 사이비적이라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태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신앙 없이 무슨 경주를 합니까?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는 것은 지금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것의 타당한 근거임을 결코 배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본론)
  본문을 읽겠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바울을 괴롭힌 것이 무엇일까요? ‘괴롭게 하다’로 번역한 헬라어 ‘코포스’는 일전에 한 번 교우들과 나눈 것처럼 ‘칼에 베이다.’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도대체 바울을 이렇게 괴롭히던 베임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사도권에 대한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눈이라도 빼어줄 것처럼 호의적이었던 갈라디아 교회의 형제들이 배교하자 당신이 무슨 사도냐고 공박하는 자로 배신한 것에 대한 치욕이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20:30-32을 읽어 보겠습니다.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면 두 가지의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하나는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에베소 교회를 공격할 것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더 중요한 하나는 그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은 이 중에 있는 장로들 가운데도 존재한다고 말한 대목입니다. 여기에 ‘어그러지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 ‘디아스트렢포’는 ‘잘못된 말로 가르친다.’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한자 단어로 왜곡(歪曲)한다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못 가르치는 자들이 누구였습니까? 바울의 목회 기간 동안 3년 동안이나 눈물을 흘려가면서 씨앗을 뿌린 목양의 은혜를 맛 본 자였습니다. 전혀 바울에 대한 문외한이거나 그가 행한 목양의 사랑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점은 충격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국 이들이 어그러진 말로 에베소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것은 영적인 의미에서 바울의 가르침을 베는 것이고, 그것은 곧 바울을 베는 것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이 얼마나 바울의 입장에서는 애석하고 아픈 일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에베소 교회에서 일어날 일에 비해 훨씬 전의 사건이기에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공동체에서 자기를 베는 일을 먼저 당하고 있는 것을 소개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전반절에서 이렇게 소리를 친 것입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아픈 소리요, 애석한 소리였지만 한편으로는 천둥 같은 소리요, 벼락같은 외침이었습니다.
  저는 바울의 이 외침이 가볍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왜? 아팠지만 이 고통을 이길 수 있는 너무나도 분명한 무기가 바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후반절에서 제시합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여기에 기록된 ‘흔적’을 헬라어로 ‘스티그마’라 했습니다. 이 단어에서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성경에는 그냥 ‘흔적’이라고 번역했지만 원어성경은 ‘스티그마타’라고 즉 ‘흔적들’ 이라는 복수 명사로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칼로 베임을 당할 정도의 고통을 당했지만 그러나 이 고통을 이기게 해 준 다양한 무언가가 있음을 시사했다는 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흔적들이 과연 무엇일까? 성경적인 내증을 한 부분 소개하면 왜 ‘스티그마’가 아니고 ‘스티그마타’ 인지에 대하여 공감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23-27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구절을 적용하면 이렇게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울이 갖고 있었던 흔적들은 무궁무진하였다고.
  설교를 준비하다가 제 눈에 들어온 영어성경 번역이 있었습니다. NLT 성경 갈라디아서 6:17절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From now on, don't let anyone trouble me with these things. For I bear on my body the scars that show I belong to Jesus.” 직역해서 말씀드립니다. “지금부터 이러한 일로 인하여 아무 누구든지 나에게 곤란함을 입히려고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나는 예수께 속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흉터들을 내 몸에 새겼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저는 우리 교우들에게 가슴을 설레게 하는 감동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울이 갖고 있었던 ‘스티그마타’ 즉 ‘흔적들’의 정체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을 여기에서 찾습니다.
  ※ 바울의 스티그마타는 예수께 속해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이 흉터가 언제 생겼습니까? 예수 때문에 다쳤을 때입니다. 예수 때문에 피해를 입었을 때였습니다. 사도행전 14:19절을 소개하겠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갈라디아의 한 지역이었던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당했던 린치에 대한 기사입니다.
  이 기사를 소개한 이유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4:20-22절에 주목해 주십시오.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맨 처음 이 구절을 만났을 때, 충격의 충격이었습니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거의 죽음에 가까운 폭력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직은 할 일이 많은 바울은 다시 소생했습니다. 소생한 바울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까무러칠 정도로 놀랄 일은 바울이 만신창이가 된 육체를 이끌고 다시 루스드라 성읍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삼은 것과 더불어 원수들이 포진하고 있는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들어가서 다시 죽기를 각오하고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놀라운 사역을 소개한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자기의 멘토였던 바로 그 바울이 죽음과 광기의 도시였던 이고니온과 안디옥에서 남긴 사족을 누락시키지 않고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다시 사도행전 14:22절을 복기하겠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바울에게 있어서 흉터 즉 스티그마타가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수 없이 많은 SCAR 즉 흉터가 바울에게 새겨지면 새겨질수록 그에게 더 깊이 확인 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the scars that show I belong to Jesus.” 내가 예수께 속해 있다는 흉터 즉 소속감이었습니다.
  토마스 아켐피스는 그의 걸작인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당신의 사도들은 세상에 살면서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악한 행동을 하거나 남을 속이지도 않았고, 겸손하고 소박했습니다. 그들은 당신 때문에 비난 듣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세상이 비웃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토마스 아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유재덕역, 브니엘, P,140,2016년) 적어도 성경에 등장하는 우리들의 신앙 선배들은 고난, 역경, 환란, 폭력 당함, 배교의 강요 등등을 당할 때마다 도리어 그런 일체의 고통들로 인해 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확실한 소속감을 더 강화시키는 스티그마타로 승화시켰습니다. 

  결론)
  우리 세인 공동체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의 레테르를 갖고 사는 자가 많습니다. 그런데 혹시 지체들이 좋을 때만의 그리스도인은 아닌가 싶어 교회를 목회하며 섬기는 저는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혹시나 나에게 예수 때문에 흉터가 생길까봐 전전긍긍하는 자가 세인 공동체에 더 많을까봐 몹시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 5:41절에서 이렇게 말했는데 우리는 혹시 그 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여 떨립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예수 때문에 당하는 상처 즉 스티그마타는 합당한 일인데 억울한 일로 변질될까 봐 몹시 두렵습니다.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여러분에는 진짜로 스티그마타가 있습니까? 단테가 신곡 천국 편을 시작하는 제 1곡에서 이렇게 찬양합니다. “이제 내 마음이 보물로 간직한 하늘의 거룩하고 성스러운 영역은 내 노래의 줄거리가 될 것이다.”(단테, 신곡-천국 편, 세계문학전집 150, 민음사,p,7) 나는 이 곳은 적어도 스티그마타가 있는 자가 갈 수 있는 영역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내가 호흡하는 동안 스티그마타를 진하게 새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