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9년 6월 30일 (다섯째 주) 지역 셀 사역2024-04-23 17:00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자신의 견해가 편견이나 오해였음을 알게 된 경험을 나누어보자.  

 
경배와 찬양 (WORSHOP)

● 찬송가: 411장 - 아 내 맘속에
●  복음성가: 한없이 크신 주의 사랑을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 역사 바로보기
● 본문 : 역대하 10:16-19
1)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한 오해
⓵ 우리가 흔히 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역사는 어떤 것입니까?
⓶ 위와 같이 해석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
⓵ 출애굽 정신의 회복 요청(대하 10:4)
⓶ 신정정치로 회귀 시도(대하 11:1-4)  

3) 적용하기
⓵ 설교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⓶ 깨달은 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사역하기 (WORK)
주간 중보기도

1) 10주년 기념 강좌를 위한 지속 중보
2) 6월 29일(토)에 실시될 미셔널 처치 부서 첫 번째 재능 기부 사역을 위해
3) 지역 셀이 섬기는 태신자 구원을 위하여 (7월 7일 맥추감사절 초청주일)
4) 피선교지를 위해
5) 군에 있는 자녀들을 위해 (이장규 신요한 김진현)
6) 대입을 치르는 학생들을 위하여(이한빛 신예찬 김혜원 정영민 정윤서 우혜민) 
7) 담임목사의 목양을 위해 


셀 사역

1) 맥추감사주일(7월 첫 주일)에 첫 번째로 태신자 교회    예배 초청하기
2) 새벽예배에 리더들 자원함으로 드리기
3) 공 예배 준수하기
5) 셀 원들의 범사 파악하여 중보하기  

 
설교요약 (SUMMARY)
설교 요약
본문: 역대하 10:16-19
제목: 역사 바로보기 
  서론: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세리장이라는 직업을 가진 삭개오가 어떻게 주님을 만나 변화되었는가와 그 결과는 또 어떤 것으로 나타났는지를 소상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28장에 걸쳐 삭개오의 흔적은 보이지를 않습니다.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고의적인 누락입니다. 적어도 마태라는 복음서 기자는 자신과 같은 직업군의 장이었던 삭개오의 흔적들을 아예 거론조차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삭개오의 이전의 삶에 대한 수치스러움 때문에. 그리고 마태 본인의 수치도 후대에 기록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는데 그의 직업의 長 格인 삭개오를 들쳐 내는 것에 대한 부담이 마태에게는 다분히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해서 본인 스스로가 역사적 사실의 기록자로서 부담감을 과감하게 제거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지성적인 제자군(弟子群)에 속해 있었던 의사 누가는 도리어 마가와 마태에 의해 의도적으로 배제시켜 버린 것으로 여겨졌던 삭개오 기사의 역사적 사실을 다시 무대의 정 중앙에 올림으로서 후대의 평가를 받기를 기대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역사는 역사가의 기록 방법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역사서를 교우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약 10권 정도의 역사서 관련 서적들을 톺아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공부의 결과물로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역사 해석이 상당 부분 왜곡되어 있다는 공부였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역사가들 중에 주류에 속해 있었던 남 유다 중심의 해석자들에 의해 상당수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류 역사가들은 신명기역사가를 비롯하여 역대기 역사가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강조했고 압박했던 이스라엘 역사에 대하여 조금은 올바른 해석이 필요할 것 같아 담임목사의 역사서 톺아보기는 바로 여기에 초점을 두고 진행하려고 합니다.   
  본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역사는 흑 역사입니다. 태생적으로 탄생하면 안 되는 나라, 결국은 하나님의 선한 뜻을 버리고 바알을 섬김으로 인해 멸망의 비극을 당했고 더 한심한 것은 그 민족은 앗수르에 혼합되어 사마리아라는 혼혈 잡종으로 변질된 패악한 무리들로 인식되어 있는 나라가 북 왕국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그 동안 알고 세뇌되어 있었던 북 왕국의 태동에 관련한 역사 거꾸로 보기에 대하여 나누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솔로몬이 죽고 난 이후 다윗의 통일 왕국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솔로몬 생전에 그의 정적이었던 북쪽 에브라임 스레다 출신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솔로몬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합니다. 이로 인해 여로보암은 이집트로 정치적 망명을 떠나 피신해 있다가 솔로몬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 정치적인 재기를 꿈꾸게 됩니다. 왜냐하면 열왕기상 11:27절 이하를 보면 선지자 아히야가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전해 주는 기사가 실려 있는데 솔로몬의 나라를 쪼개서 10지파를 여로보암에게 주어 한 나라를 이루게 하겠다는 신탁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신탁을 마음에 품은 여로보암은 때를 기다리다가 솔로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라온 것입니다. 사람을 들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겠다는 성경적인 스토리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여로보암이 북 왕국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뿌리 깊게 남아 있었습니다. 유다 지파 출신이었던 다윗은 그가 왕으로 등극할 때 끝까지 북쪽의 견제를 받아 왕이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실로 북쪽 지파에 대한 앙금이 있었고, 항상 북쪽은 다윗 치세로부터 그의 아들 솔로몬 왕에 이를 때까지 견제의 땅이었고, 불온의 땅이었습니다. 이뿐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압살롬의 반란과 세바의 반란 때 진압과정에서 북쪽 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애매한 피를 많이 흘렸고, 항상 불온한 지역으로 평가되던 북쪽은 솔로몬이 통치할 때 지역 분할을 12개의 행정구역으로 세분화시켰는데 남쪽에 있었던 유다 지파는 배제하고 12 분할의 북쪽에게만 세금을 부과하는 편파행정과 통치를 자행했던 어찌 보면 대단히 불행했던 땅입니다.
  그러기에 솔로몬 사후, 잃어버렸던 권리 그리고 되찾아야 하는 권력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북쪽 지파 공동체는 이 판에 판을 갈겠다는 의지가 강력했습니다. 마침 솔로몬이 아들인 르호보암은 북쪽 지파의 세겜으로 이동을 해서 북쪽 지역에 있는 호족들에게 왕으로서의 인준을 받아내기 위한 절차에 들어갑니다. 르호보암이 기대했던 것은 전적인 충성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회를 포착한 북쪽의 10지파는 조건부 충성을 내 겁니다.
역대하 10:4절입니다.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이 요청의 무리에는 여로보암도 포함되어 있었음을 역대기 역사가는 역대하 10:3절에서 언급합니다. 문제는 우리들이 잘 아는 것처럼 르호보암이 이 요청을 거절했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역사가는 북쪽의 여로보암이 반역을 일으켜 나라를 분열시켰음을 은연중에 고발합니다. 오늘 본문인 역대하 10:16-1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설교자인 제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19절 본문입니다. ‘배반하여’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파솨’는 ‘반역하다.’는 의미가 강한 단어입니다. 역사가는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였다고 말합니다. 전형적인 이긴 역사가의 입장이나 주류 역사가의 입장입니다. 왜 이 역대기 역사가가 이렇게 역사를 바로 보지 못했을까? 에 대한 답은 오후 강좌를 통해 살피겠습니다. 다만 낮 예배를 통해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은 북 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바른 해석입니다.
※ 북 왕국은 믿음에 대한 역동이 있었던 하나님의 공동체였습니다.
  정말로 북 이스라엘이 그렇게 패역했을까? 두 가지의 예를 들어 반론을 제기해 보겠습니다. ⓵ 북 왕국은 출애굽을 이루신 하나님의 정의에 더 가까이 있던 믿음의 공동체였습니다. 여로보암은 르호보암에게 폭력적인 정책을 가하지 말라고 종용했습니다. 북쪽에 집중되어 있었던 강제적인 세금 집행을 하지 말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멍에를 풀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다시 역대하 10:4절을 읽습니다. 이 요청은 출애굽 정신의 회복을 요청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선조들은 노예에서 건지셨던 하나님의 그 원형 정신을 다시 회복해 달라는 간곡한 민중들의 노래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그 요청과는 정반대되는 심한 강압정책의 선언이었습니다. 역대하 10:14절입니다. 반 출애굽적인 정책은 북쪽이 아니라 남쪽 유다의 민낯이었습니다.
  ⓶ 인본적인 왕정정치를 하나님의 카리스마적인 신정정치로 회귀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여로보암은 르호보암에 대항하여 일어나 북쪽 공동체에 의해 인준을 받고 왕이 되었습니다. 주목할 만한 성경 요절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역대하 11:1-3절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졸지에 반역을 당한 것이 된 르호보암이 아직은 군대가 잘 정비되지 않은 북쪽의 여로보암 추종자들을 진압하고 다시 왕권을 북쪽까지 확장하려고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자, 하나님께서 예언자 스마야에게 신탁을 주시기를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고 르호보암에게 지시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왜요? 역대하 11:4절이 그 답을 알려줍니다. 일련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북 왕국 이스라엘의 탄생은 대단히 든든한 성경적인 기초를 갖고 있는 하나님의 시나리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저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오늘 우리들이 건져 올려야 할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 신학적, 성서적 바름을 이루기 위해 질문하는 신앙을 견지하는 교우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질문하지 않는 신앙에서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바름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는 공동체는 사장되고 맙니다. 성경적인 진리와 올바른 신학적인 십자가의 도를 위해 역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교회는 얼마 후면 박제된 교회가 됩니다. 구약 톺아보기를 왜 진행했습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바른가를 체크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하나님께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까? 그 질문의 역동 앞에 있는 성도가 건강해 지기 때문입니다.
  결론: 이제 저는 설교를 맺으려고 합니다, 페이스 북에 몇 주 전, 목양터 이야기 마당에 올려놓은 ‘덤’이라는 제하의 글을 링크하였습니다.
  중략…북 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진짜로 버리신 왕국인가? 민초들을 압제하지 말고 공의와 정의롭게 정치를 해 달라고 르호보암에게 부탁하던 여로보암의 추종자들은 다윗의 계약을 짓밟은 이단아들인가? 조금만 더, 오므리 왕가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그 집단은 반드시 멸망을 받을 만한 탄생해서는 안 될 태생적 약점을 갖고 있었던 패역의 무리 그 이상의 해석은 불가능한 것일까? 예후 정권의 쿠데타가 선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해석에서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데 혹시 그 해석은 승자 독식구조의 철저한 공식을 따르고 있는 신명기 사가들의 편들기로 보면 안 되는 것일까? 공부하다가 불온(?)하게 갖게 된 질문들이지만 나에게는 분명히 그 동안에 뇌에 저장되어 있었던 구약의 주류적인 해석(신명기적인 역사 해석 그리고 역대기적인 해석)을 뒤집어 봄으로 인해 임한 지적인 덤임에 틀림이 없는 기회가 되었습니다…중략
  이 글을 올리자 예언서 톺아보기 강사였던 차준희 교수가 이렇게 비판적으로 댓글을 올렸습니다.
“신명기사가와 역대기사가의 의도를 비판하지 말고, 이들의 의도에 대한 신학자들의 편협하거나 미진하거나 편파적인 해석을 비판적으로 읽는 것이 정도가 아닐까? 바울의 메시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 메시지에 대한 해석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친구”
  친구의 고언을 진정성이 있게 받았지만 저는 차 교수의 비판에 대하여 수용할 뜻이 없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오후 강좌를 통해 다시 공부하겠지만 북 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평가는 이긴 자의 평가요 다분히 유대 종교적 편협함으로 해석된 역사 보기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절대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따라온 잘못된 해석에 대해 질문해야 합니다. 마치 삼박자 축복이 얼마나 반신학적인 내용인지를 후대의 지성적 그리스도인들이 질문하여 밝혀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