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첫날 10월 28일(월): 아부다비에서 프랑크푸르트로2024-11-27 13:50
작성자 Level 10

종교 개혁지 순례 여행기

 

첫날 1028(): 아부다비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인천 공항에서 030분쯤에 비행기 동체가 이륙했다. 그렇게 10시간의 비행 끝에 아부다비에 도착한 시간은 UAE 현지 시각으로 오전 6시쯤이었다. 이제 막 동이 틀 녘이었기에 10시간 비행으로 인해 파김치가 된 몸이었지만, 낯선 나라에 그것도 중동이라는 태어나서 처음 발을 디딘 아부다비 공항에서의 내 모습은 대단히 이방적일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국적기를 타고 곧바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들어가는 약속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스케줄이 틀어졌다. 여행사 측은 아랍에미레이트 국적기인 에티하드 항공 편으로 바뀌었고, 결국 아부다비를 경유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며 참석 여부를 결정하라는 대단히 무례한 요구가 있어 종교개혁지 순례 자체를 포기할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시간이 늦추어질수록 체력적으로 더 많은 피로감이 가중될 것을 알았기에, 아내와 울며 겨자먹기의 심정으로 결정한 순례 여행 일정은 시작부터 매우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부다비에서 체류해야 8시간의 일정은 심리적으로 개운치 않았다. 8시간 체류는 물론, 앞으로 독일까지 다시 비행해야 할 6시간은 적지 않은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시작된 순례 일정이 과연 어떨까, 반신반의하며 아부다비 여정에 동참했다.

프랑스 루브르를 이미테이션한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 아부다비 민속촌, 페라리 월드 등등 비행기 환승 시간에 맞추어야 하기에 외관을 보는 것으로 족해야 했던 시티 투어가 그렇게 끝났다. 잠시 머문 이슬람의 나라에서 여러 생각을 갖게 한 것은 버스 투어로 외관만 감상한 아부다비 그랜드 모스크의 위용을 보면서다. 이슬람 신정정치 국가체계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만 가능하기에 이론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거대한 종교 권력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본 느낌 때문에, 앞으로 경험하게 될 박제된 중세 가톨릭이라는 사장화(死藏化) 된 종교를 마치 반사하는 메타포로 여겨지는 묘한 감정이 이슬람 사원을 통해 밀려왔다.

다시 공항, 아부다비 입국장에서 여성 군인이 이렇게 내게 물었다.

“Why did you come to Abu Dhabi?”

질문에 뭐 굳이 할 말이 없어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I am going to see a beauty of city in Abu Dhabi.”

패스포트를 건네주던 그녀가 씩 웃으며 또 한마디를 한다.

“You look good. Have a nice trip.”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런 격려도 받고. (ㅎㅎ)

거의 8시간을 아부다비에서 보내자, 체력적으로 신호가 왔다. 쉬어야 할 때라고. 하지만 프랑크푸르트까지 6시간을 또 비행해야 하는 부담이 밀려왔다. 아들이 조금의 비용을 더 들여서 체크인해 준 이코노믹 앞 좌석이었기에 기대했는데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독일인 젊은 부부와 아이 둘이 옆 좌석 매이트였는데, 갓난아기는 기압 차이로 이륙부터 착륙까지 울었다. 왜 아니 그러하겠는가, 이해는 했지만 6시간은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당황하지 않고 인내하는 독일인 젊은 부부가 원망스러운 게 아니라, 대단하다는 생각에 정서적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한 시간은 현지 시각으로 저녁 7시쯤, 그러니까 한국 시각으로는 새벽 3시 어간이었다. 몸은 이미 파김치가 된 상태, 짐을 찾고 숙소인 하이델베르크 HOTEL NH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였다. 숙소에 짐을 풀었는데 아뿔싸, 이게 웬일, 캐리어 중에 낯선 게 하나 방에 있다. 짐을 열어보니 두 보루나 되는 담배가 들어 있다. 호텔에서 취침 시에 바꿔 입을 옷가지 들어 있는 내 캐리어가 기사의 캐리어와 비슷해 바뀌면서 일어난 사달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야 비로소, 기사의 캐리어와 바꾸며 왠지 모를 해프닝으로 인해 순례 여정이 녹록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이렇게 순례 여정의 첫날이 저물었다.

시편 84:5절을 표준 새 번역은 이렇게 번역했다.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2009년에 출애굽 여정의 순례길에 올랐다. 2016년에는 바울의 여정도 순례를 통해 경험했다. 그리고 이번, 성결교회 신학적 전통에 서 있는 지만 종교개혁자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순례 여정을 경험하기 위해 길에 나섰다. 혹시 내게 임기 중에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영국을 다녀올 예정이다. 그래도 웨슬리의 흔적은 보아야 하기에 말이다.

시인의 말대로라면 나는 복이 있는 사람이다. 이지 주지하듯이 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아쉐르’(אַ֭שְׁרֵי)는 세속적 영역의 복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전적으로 영적인 복을 의미하는 단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불편한 길을 걷기로 다짐하며 대단히 의도적으로 그 불편한 길에 들어선 이들이다. 오래전, 김기석 목사의 글에서 이 문장을 만났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길을 나의 길로 삼아 살아가는 것이다.” (김기석, 걷기 위한 길, 비아토르, 9)

명징한 성찰이다. 담임목사가 섬기는 교회 공동체를 12일이나 비운 체, 외지에 있다는 것이 평범한 목회자에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의 부담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부담스러운 순례의 길에 나선 이유는 나보다 앞서서 불편하기로 결심한 믿음의 선배들의 향기를 맡기 위해서다. 그들의 족적(足跡)을 통해 나 또한 올곧게 천로역정의 길에서 주님의 다바르’(דְּבַר)를 듣기 위해서다. 프랑크푸르트에 오기까지 녹록하지 않은 여정을 체휼했지만, 이제 내일부터 펼쳐질 순례의 여정이 내 심장을 뛰게 하기에 진정하며 익숙하지 않은 시간, 장소에서 첫날의 잠을 청해보기로 했다. 쉽게 잠들 것 같지 않지만, 주님이 동행하는 밤을 기대하면서.

이 글을 쓰는 제천세인교회 서재 창으로 보이는 제천 시내는 온통 하얗다. 첫눈치고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리는 것은 제천에서 둥지를 튼 21년 만에 처음이다. 내리는 눈처럼 온 세상이 순결하기를 화살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