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에 대천에서 진행된 교단 목회자 컨퍼런스를 다녀왔다. 전도사 교육의 한 강의를 섬겨야 했기 때문이다. 제천에서 대천까지 앞 글자만 다른데 다녀오는 내내, 1시간 30분 강의를 위해 세 시간을 달려갔다고 운전해 준 아내가 툴툴댔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환경을 뚫고 같은 충청도 행정 구역인데도 멀고 먼 대천에 도착해서 전도사 교육을 맡아 섬겼다. 강사 섭외가 왔을 때, 2년 전 같은 사역을 섬겼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교단에서 유일하게 작지만 의미 있는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섬김이라 생각해 수락했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책임질 교단 목사 후보생들에게 산전수전공중전을 겪으며 달려왔던 선배의 고언은 그래도 들을 귀가 있는 후배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위했기 때문이다. 특강 제목은 신 사사시대에 읽는 사사기 나누기였다. 2년 전에 비해 강의에 참여한 인원이 약 20명 정도가 준 60여 명이 참여했다. 교단 내, 목사 후보생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교단의 미래가, 아니 한국교회의 미래가 장밋빛이 아니라는 증거가 컨퍼런스 현장에서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했다. 학령 인구의 급감을 제일 원인으로 들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이유는 아프지만 교회의 위상의 퇴보가 결정적 이유다. 강의에 참석한 전도사들은 개인적으로 아들보다 연령층이 낮은 세대다. 결국 강사로 섬긴 나는 수많은 아들들을 앞에 앉혀 놓고 뭔가를 말해야 하는 부담을 짊어진 셈이다. 아주 가끔은 아들을 생각하며 잠을 설칠 때가 많은데, 수강한 목사 후보생들을 보며 같은 감정이 밀려와 만 가지 감정이 스멀댔다. 작금, 한국교회를 미래에 짊어져야 할 후보생들은 유발 하라리의 지적대로 인간이 신성에 달성(attaining Divinity)했다고 호통치는 호모-데우스 시대를 맡아야 할 젊은 종들이다. 이 무시무시한 시대의 한복판에 있는 후배들에게 앞선 세대에 목사의 직을 갖고 평생을 먼저 살아낸 선배는 무엇을 말해야 할까, 강의 내내 속마음이 울렁거렸다. 상투성에 진절머리를 내는 저들 세대다. 그러기에 꼰대 짓(?)만 하면 듣지도 않을 것은 물론, 스스로도 후회할 것 같아서 사사기를 빙자하여 AI가 재판석에 앉아 있고, 야훼는 피고석에 쭈그려있는 2024년을 냉정하게 성찰했다. 이 참담한 한국 기독교 안으로 들어오겠다고 손짓하는 후보생들에게 나는 그날 격려가 아닌 비수를 던졌다. ① 지성적 영성에 도전하지 않으려면 더 나아가지 말고 여기서 멈춰라. 신 사사시대에 그대도 살고 교회도 살며, 성도들도 사는 길이다. ② 지성이란 날마다 다가오시는 주군이신 로고스를 다바르와 레마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다. ③ 영성이란 거침없이 엎드림으로 압도하시는 전인격적인 성령의 조명을 날마다 받는 실력이다. ④ 강단의 가치를 균형 잡힌 메시지로 무장해서 수준을 끌어올려라. 두 개의 하나님의 나라와 사도행전적인 성령의 일하심이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임과 물러서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캐리그마를 선포하기 위해 끊임없이 독서하고 기도하라 가뜩이나 무거운 짐을 짊어진 후배들이지만, 더 무거운 짐을 맡기고 돌아왔다. 나는 이미 간 세대인 내 세대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 푸르고 푸른 그래서 싱그럽기까지 한 후배들에게 희망의 닻을 띄우고 싶다. 저들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할 것 같다. 이제 무대에서 사라질 꼰대의 마지막 소망이다. 교단 전도사들이 걸어야 할 천로역정의 길에 하나님이 저들을 안고 가기를 화살기도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