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일 아침, 엄청난 비가 내렸다. 지난 여름, 내리지 못한 한(恨)이라도 풀 듯이 장대비가 세차게 내렸다. 덕분에 심각한 가뭄으로 인해 애태우던 농민들의 시름이 사라진 위안거리가 되는 단비였다. 토요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간단히 아침 거리를 먹고 서재로 나온 시간은 오전 7시 10분. 토요일 아침은 전 교우들이 교회를 청소하는 공동의 섬김을 개척 이후 실천해 오고 있다. 청소도 거의 마칠 즈음, 섬기는 지체가 커피 배달을 왔다. 지체는 새벽예배 후에 교우들에게 사랑을 전할 커피를 일일이 나누고자 경영하는 매장에서 직접 드립(drip) 한 너무 귀한 커피를 들고 교회에 나왔다. 유감스럽게 가지고 온 분량의 커피를 다 전달하지 못했다. 청소를 마친 지체들이 일찍 귀가하고 난 뒤라 소정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3층 서재로 올라온 지체가 밝게 말한다. “목사님, 따뜻한 커피 드시죠? 커피 배달왔어요.” 내놓는 take out 용 커피 컵을 받는데 뭔가 가슴 깊은 곳에서 뭉클한 것이 올라온다. 그 사랑이 얼마던가, 그 정성이 얼마던가! 받는 순간, 당연한 것이 아닌데 받은 감격으로 인한 그 사랑 때문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가뜩이나 폭발 직전인데 아내가 옆에서 확인 사살 하듯 한마디를 거든다. “참 마음이 예쁘다. 쉬운 일이 아닌데” 나는 내가 섬기는 교회가 당연한 것이 아닌 데,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 그런 천박한 교회를 만들고 싶지 않다. 감사는 감사로, 은혜는 은혜로 되갚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싶다. 그게 교회다. “공동체 안에는 강함이나 약함, 영리함이나 어리석음, 유능함이나 무능함, 경건함이나 경건치 않음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공동체 안에 있는 전혀 다른 개인의 모습은 더는 왈가왈부할 일도, 판단하고 정죄하며 자기를 정당화할 근거도 되지 못하며, 오히려 이 모든 것이 서로 기뻐하며 서로 섬겨야 할 이유가 될 뿐입니다. 그러면 공동체의 각 지체에게 그가 있어야 할 자리가 주어집니다. 그 자리는 가장 성공적으로 자기 자신을 주장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가장 잘 섬길 수 있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성도의 공동생활』, 복 있는 사람, 154쪽) 오래전에 읽은 본회퍼의 일갈대로 내가 가장 잘 섬길 수 있는 그 자리에서 섬김으로 사랑을 나누려는 지체를 보고 매우 행복한 예비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주일을 섬기기 위해 자리에 들기에 앞서 사랑의 마음을 갖고 섬김을 실천한 지체를 격려하고자 글말을 나눈다.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