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는 것은?
두 달여 동안 본의가 아니게 여러 기독교 언론사에 글을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국민일보 신문을 시작으로, 신앙계(信仰界)에 그리고 교단지인 나사렛 신문사에서 요구하는 내용에 맞게 글을 써서 송고하게 되었습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크게 보면 이 언론 계통에서 저에게 요구한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오늘, 목사로 살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 여기에 부합한 글들을 쓰면서 스스로 나를 뒤돌아보게 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공부의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참 좋은 교사상을 제시함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어린이 글쓰기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아이들을 지도했던 고 이오덕 선생은 생전에 이런 말을 곧잘 했습니다. “머리로 쓴 글은 삶이 없이 쓴 글이다. 그러나 가슴으로 쓴 글은 정직한 글이다.” (이오덕의 “글쓰기”,p,100) 이 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저이기에 글을 보내면서 한 가지 원칙을 정했던 것이 있습니다. 내 삶이 아니었던 것은 단 한 자(字)라도 기록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글을 쓰면서 집중할 수 있었던 맥이 보였습니다. 지금 ‘내게 있는 것’에 대한 집중력이었습니다, 나는 목사로 살아온 지난 세월동안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것이 아니며, 또 누구는 이렇게 살았다고 하더라는 식의 ‘카더라’ 통신을 말하는 자가 아닌 바로 내 것이 무엇인가를 날카롭게 되돌아보는 비평적 성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에서 신대원생들을 지도하는 학기에 조금은 지나친 면이 있다고 생각되더라도 아주 강하게 역설한 것이 있었습니다. 네 것이 있느냐는 도전이었습니다. 내가 누구의 설교를 인용하면 그건 내 설교가 아니라 인용한 그 사람의 설교이고, 내가 어떤 유능한 목사의 목회 방법을 도입했다면 그건 그 유능한 목사의 것이지 네 것이 아니라고 압박했습니다. 아, 물론 누구든지 지혜로운 이미테이션과 벤치마킹을 하지 않고 성장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 역시 인정하고 동의합니다. 문제는 그것에 매몰된다는 것이고, 거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이며, 결국은 수없이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내 것이 없는 비참함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몇 몇 언론사에 글을 써서 기고하면서 아주 냉정하게 내 것은 무엇인가를 저 역시 물었습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이 이것이었습니다. 이 시대에 목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① 상식이 있는 지성의 사람 ② 균형 잡힌 감성의 사람 ③ 기름 부으심이 있는 영성의 사람 결국은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들임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는 지성적 상식을 갖고 사는 자이며, 어떤 경우에서라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감성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자이며, 승부수는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기름부음의 영성임을 인지하고 사는 자임을 알고 그 신앙적 원칙에 함몰되어 사는 존재가 목사라는 복기가 다시 제 안에서 꿈틀댔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목사의 삶은 호불호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안티들도 버젓이 존재하며, 심지어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들보다 교회 안에 있는 명목적 신자들에게 더 많은 공격을 받는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이게 내 것이라면 사수해야 한다는 마음이 글을 쓰며 더 다져지게 된 수확 중에 하나였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였기에 미문(beautiful gate)에서 구걸하던 거지에게 베드로가 외쳤던 그 외마디가 크게 공명되어 나의 귓전을 때린 한 주간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사도행전 3:6) 목사로 살면서 내게 있는 것이 은과 금이 전부라면 그건 저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게 있는 것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다시 기도해 봅니다.
“주님, 상식이 있는 지성의 목사 되게 하시고, 균형 잡힌 감성의 목사 되게 하시며, 날마다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조명 받는 영성 있는 목사 되게 하옵소서. 이것이 내 것이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