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Holiness)이라는 이름을 다시 새기면서
“대한기독교 나사렛성결회는 전 세계 156개국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국제적인 교단으로서 감리교 선구자인 요한 웨슬레의 성결신학을 바탕으로 하는 성결교단입니다. 대한기독교 나사렛성결교회의 최우선 목적은 그리스도인의 성결을 전파하고 보존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있습니다.”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 총회 홈페이지에 링크되어 있는 교단 정체성을 설명하는 문장입니다. 읽다가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어줍지 않은 신학생시절, 절대예정론에 대하여 적지 않은 비평적 성찰을 하던 제게 소낙비가 같이 시원하게 신학적 대안의 통찰을 주었던 ‘웨슬레 신학’이라는 이름을 다시 만났고, 무엇보다도 11년 만에 잠재적으로 마음에만 간직했던 성결교회라는 이름을 되찾을 수 있어서였습니다. 제가 ‘성결’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갖는 이유는 ‘성결교회’라는 표제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의 신학적 무게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성결’은 제 신학의 결정판이라는 또 다른 측면이기 때문입니다. 신학대학교를 다니면서 교단 신학의 전도표제인 소위 말하는 사중복음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배웠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기 전, 평신도 시절에는 ‘중생’(거듭남)의 의미에 대단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신학에 대하여 전혀 문외한이었던 저는 고향 교회를 섬길 때 담임목사께서 중생(거듭남)이 신앙생활의 전부라고 가르쳤던 그 학습에 세뇌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신학생이 된 이후, 중생(거듭남)이라는 것은 신앙의 문으로 진입하는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언제나 영적으로 버걱 대던 저의 갈급함을 풀어주기에 충분한 ‘성결’의 신학적 의미를 알면서 열광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기에 제게 있어서 ‘성결’은 교단의 이름이라는 자부심보다 앞서 ‘성결하게 살기’에 더 천착하게 만들었던 신학하기의 동기부여였습니다. 성결교회 전도사 2년, 목사로 18년 그렇게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역했습니다. 그러다가 타의에 의해 11년이라는 시간동안 저는 ‘성결’이라는 이름은 가슴에만 간직하고 성결에 대한 교리적인 강조는 숨고르기를 했습니다. 혹시나 모를 ‘성결’이라는 이름을 도용했다는 시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성결이라는 이름은 조심해야 할 단어가 되었기에 사역은 현장에서 신학적 방향성으로 ‘성결’을 설정할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의 지난 시간을 경험했습니다. 이 아픔을 인지하신 주님은 그리고 이제, 또 다시 남은 10년이라는 마지막 목회의 필드에서 종에게 ‘성결’이라는 이름을 되찾게 하셨고, 수면 밑에 숨겨져 있었던 ‘성결’이라는 단어를 다시 목회 사역의 무대 위에 올리게 해주시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해서 ‘성결하기’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 주에 제천세인교회라는 이름으로 11년간 달려왔던 교회 외벽에 교단 이름을 삽입한 교회이름이 새겨집니다. 교회 홈페이지도 교회 소개 콘텐츠에 성결교회 이름을 덧붙인 글로 이미 개편했습니다. 적당한 시간에 교회 주보도 독립교회 연합회 제천세인교회에서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 제천세인교회로 갱신될 것입니다. 교회 봉고 차량 마크도 성결교회의 이름을 되찾고 달릴 것입니다. 일련의 이런 일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교회가 대한기독교나사렛 성결교회로 가입하게 된 자연스러운 행정적인 변환의 일환입니다. 여기까지는 긍정의 멘트입니다. 그러나 이런 변환에 즈음하여 세인지체들에게 당부 드리고 싶은 담임목사의 소회는 부담스럽습니다. “제천세인교회가 제천세인성결교회가 되는 결정적인 요소는 행정적인 이름의 변화가 아닌 세인지체들이 성결하게 사는 삶이 이루어질 때입니다.”
이 삶을 살아내지 않으면 제천세인교회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결교회일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에 속한 성결교회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성결교회에 소속된 성도라 하더라도 주님이 살아내셨던 성결한 삶을 살아내지 못하면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결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세인교회의 지체들이 성결교단에 속해 있는 이름뿐인 성결인들이 아니라 주군이 요구하시는 성결한 삶을 반드시 살아내는 진정한 성결인들이 되기를 저는 두 손 모아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절절하게 필요한 하나님의 사람은 성결교회에 속한 성결인이 아니라 성결한 삶을 살아내는 성결인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