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예의를 지키는 그리스도인입니까? 목회 멘토이셨던 이재철 목사께서 쓰신 ‘인간의 일생’에 보면 이 목사께서 제 3세계 선교사들이 모이는 선교사 수련회에 참석했다가 경험했던 아찔한 불상사 하나를 소개합니다. 당시 수련회는 제 3세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볼 때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 아름다운 휴양도시에 소재한 1급 호텔에서 열렸습니다. 그 호텔 경영자가 한국인이었기에 담당자의 섭외와 경영자의 섬김이 어우러져 선교사들에게는 대단히 좋은 장소에서 쉼과 더불어 수련회를 가질 수 있었음을 이 목사는 술회했습니다. 사달은 그 날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아침 7시가 되기도 전에 선교사 아이들이 복도에서 뛰어놀기 시작했습니다. 숨바꼭질, 칼싸움, 달리기 그리고 씨름까지 호텔 복도는 말 그대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의 부모인 선교사들 중에 그 누구도 자식들을 제지하지 않았기에 이 목사는 수련회가 끝나기 전에 호텔 경영자 부인에게 아이들의 무례함에 대하여 대신 사과를 전했는데 그 날, 그 호텔의 종업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을 주고받는 것을 들었다고 책은 보고합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불손하고 무례한 자들을 향하여 비난할 때 흔히 쓰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 자는 ※※ 지방 출신이 틀림없다.” 그런데 종업원들이 호텔 경영자 부인에게 그날 이렇게 말했답니다. “저 아이들은 ※※지방 아이들보다도 더 버릇이 없다.” 풀러 신학교 총장을 역임한 리처드 마우 박사는 ‘무례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하나님은 공적인 의에 대하여 온유한 관심과 존중하는 자세를 갖고 계신 분이다.”(p,46) 이것을 인정하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면 너무나도 마땅히 성도 역시 공적인 의에 대하여 온유해야 하며, 존중하는 하는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세족 목요일 저녁,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입고 계셨던 겉옷을 벗으셨습니다. 섬김에 불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주님께서 소위 제자들에게 유언처럼 남기셨던 다락 방 강화를 행하시기에 앞서 한 가지 일을 먼저 하셨음을 복음서 기자가 기록합니다.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요한복음 13:12) 주님이 설교를 하시기에 앞서 벗고 있었던 옷을 다시 입으셨던 것은 제자들을 향한 설교자의 예의를 갖추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예배 시간에 본당을 들어오는 교우 중에 몇 명이 들어오자마자 강대상을 향해 목례를 하고 들어옵니다. 그 지체들은 공통점이 수년간 불교에 심취해 있었던 교우들입니다. 제 스스로가 익숙하지 않은 그 지체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매번 고개를 숙이지! 그러다가 이런 나름의 소회가 임했습니다. 이판적인 불교적 영성의 습관이리라. 그들을 보면서 이런 영적 부침이 저에게는 밀려올 때가 많습니다. 지존하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그 시간, 예배당에 들어오며 시끌벅적 소란을 피우며 들어오는 사람, 다리를 꼬고 설교를 듣는 자, 요란하게 껌을 씹으며 설교를 시청하는 자, 팔짱을 끼고 나를 한 번 감동시켜 보라고 시위하는 자, 예배 시간에 습관적으로 늦는 자, 얼마나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면 저럴까, 안타깝기 그지없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2020년, 세상이 세인을 볼 때 예의를 지키는 공동체라는 소문이 회자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왜? 우리 교회는 세인(世認)교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