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외출
벌써 꽤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아내가 여성으로 이 연령 때 즈음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하는 고통을 앓고 있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아내는 특히 불면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아 옆에서 보기에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금요일 1박 2일의 일정으로 아내가 외출을 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20년 전, 먼저 하나님의 품에 안긴 남동생 20주기를 맞이하여 잠들어 있는 묘에 방문하기 위함이고, 또 다른 하나는 평생 웬수의 또 한 달의 먹거리를 갖다 주기 위함입니다. 3일 전부터 전혀 잠을 자지 못한 아내가 서울을 경유해서 인천 강화에 다녀와야 하는 장거리 계획이 여간 불안한 게 아닌데 아니나 다를까 당일 날도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버럭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애먼 아내를 향해 가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 나를 눈치 챈 아내는 평소와는 달리 눈치를 보며 아들 먹거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어떻게 안 가냐고 갔다가 오겠다고 고집을 피우는데 평생 웬수가 더 미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서른이나 된 놈을 아직도 챙겨야 하는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이런 고생을 하는 엄마의 노고를 아들놈은 몇 %나 알까 하는 마음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장가나 보낼 걸, 괜히 공부를 더하라고 해서 지 엄마를 혹사시킨다는 생각에 남편으로 왠지 아내가 애처로워 그걸 감추는 심리로 애꿎은 아내 타박을 했습니다. 서울로 올라가는 2시간 여 혹시나 졸면 어떻게 하지! 하는 마음에 긴장을 하며 화살기도를 놓지 않았습니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안도하며 아내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들놈 타박을 했지만 사실은 제가 더 강하게 붙잡을 수 없었던 이유는 살아생전 끔찍이 사랑했던 남동생을 보러 간다는 나름의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여보, 난 가끔 재엽이를 생각하면 너무 아프고 마음이 아려요.” 왜 안 그러겠나 싶었습니다. 20년 전, 그 젊고 젊은 생떼 같은 남동생을 졸지에 잃었으니 말입니다. 미루고 미뤘다가 찾아보기로 한 남동생을 향한 간절하고 애틋한 누나의 사랑을 그 동안 많이도 참아냈다 싶어 함께 동행 해 주지 못한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렸습니다. 뒤돌아보니 너무 감사한 것이 많았습니다. 아버지의 부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상주의복을 입던 8살 딸, 7살 아들이 이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너무나 장하고 커주어 사회에 일익을 감당해 주는 조카들로 서 주었음도 감사하고, 너무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였기에 얼마든지 마음먹기에 따라 새 출발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아들과 딸을 위해 희생해 준 처남댁에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아마도 아내가 20년 전의 그 아픔을 딛고 잘 일어서준 조카들과 올케를 적절하게 위로하고 올 것이라고 믿기에 아내의 육체는 너무 힘들었겠지만 귀한 일을 해준 아내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목양터의 이야기 마당을 쓰고 있는 지금은 금요일 저녁입니다. 바라기는 처갓집에 평생 웬수와 보내는 하루가 조금의 쉼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또 분명 청소한다고 친정을 뒤집어 놓을 게 분명해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만 하루라도 숙면할 수 있었어 제천에 안전하게 도착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래도 토요일 저녁에 도착하면 아내가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김치찌개는 정성을 다해 해보렵니다.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김치찌개라서. ㅠㅠ. 아내의 빈 자리가 너무 커 보이는 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