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목사님컬럼] 덤 (an addition)2024-04-17 17:42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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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 (an addition)

오늘부터 세인교회 창립 10주년 기념 구약 특별 강좌 사역이 진행됩니다중보 해 온 대로 하나님께서 세인교회를 사랑하셔서 전무했던 성령이 기름 부으시는 지성적 은혜를 주실 줄로 기대합니다이 사역은 금년 목회 사역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 해 연말 기도원에 입소하여 계획을 짤 때 기도하며 도안해 낸 사역입니다원래 계획은 네 분의 강사를 모셔서 모세오경을 시작으로 역사서지혜서예언서 톺아보기를 감당하려던 틀이었습니다강사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후배 교수 한 명의 스케줄이 맞지 않아 난처했는데 또 다른 학자를 섭외한다는 것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어서 결국은 담임목사가 역사서를 맡아보기로 하는 용기(?)를 냈습니다.

앞서 섭외된 교수님들의 역량은 못 따라잡겠지만 그럼에도 세 분이 던져주고 갈 성령이 기름 부으신 지성적 신학적 성찰에 누()가 되지 않는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제 스스로 긴장하고 평상시에 그리 많이 읽지 못했던 역사서 관련 서적들을 거의 두 달 정도 손에서 떼지 않고 공부했고 또 하고 있습니다그 결과 첫 번째 덤이 수북하게 쌓인 단면이 있어 행복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역사의 승자 측에 속해 있는 신명기 사가와 역대기 사가들이 대체적으로 증언하고 기록한 북 왕국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편협한 해석을 반대로 접근하는 공부를 한 것입니다통상적이지 않은 이 접근과 공부는 저에게 예기치 않은 쏠쏠한 유익을 주었습니다그것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역사 거꾸로 보기를 통해 얻게 된 신선한 충격이라는 덤입니다.

작년 연말유시민의 역사위의 역사’(돌베개 간, 2018)를 읽다가 특히 그가 소개한 레오폴트폰 랑케의 역사와 신학의 해석에 대한 성찰 부분에서 있었던 그대로’(wie es eigentlich gewesen)의 역사 전개에 주목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p,136) 물론 유 작가는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에 대하여 대단히 비판적(무지와 정치적 유용성)으로 랑케를 평가했지만내심 그런 역사적 진실을 가려내는 것과 그 작업을 해내는 것이 지성인들의 몫이라고 생각했기에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위한 노력과 공부에 대해 초점을 흐리지 말자는 나름의 오기를 갖고 독서를 끝냈던 추억이 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진짜로 버리신 왕국인가민초들을 압제하지 말고 공의와 정의롭게 정치를 해 달라고 르호보암에게 부탁하던 여로보암의 추종자들은 다윗의 계약을 짓밟은 이단아들인가조금만 더오므리 왕가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그 집단은 반드시 멸망을 받을 만한 탄생해서는 안 될 태생적 약점을 갖고 있었던 패역의 무리 그 이상의 해석은 불가능한 것일까예후 정권의 쿠데타가 선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해석에서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데 혹시 그 해석은 승자 독식구조의 철저한 공식을 따르고 있는 신명기 사가들의 편들기로 보면 안 되는 것일까공부하다가 불온(?)하게 갖게 된 질문들이지만 나에게는 분명히 그 동안에 뇌에 저장되어 있었던 구약의 주류적인 해석(신명기적인 역사 해석 그리고 역대기적인 해석)을 뒤집어 봄으로 인해 임한 지적인 덤임에 틀림이 없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언젠가 한 번은 리베카 솔닛케네스 베일리 때문에작년에 또 언젠가 한 번은 강남순 때문에 그리고 금년 또 언젠가 한 번은 신형철과 박일준 때문에 상투성과 싸워야 똑바로 다시 볼 수 있다는 전율함의 도전을 받아 감사했는데그러고 보니 제게 주어진 이번 구약 톺아보기 사역은 성도들을 위한 사역은 물론 이강덕이라는 허접한 목사를 불쌍히 여기셔서 더 공부하라고 다그치시는 하나님의 만지심이라는 또 다른 덤임을 알게 되어 그 덤을 받게 하셨고 또 받게 하실 것 같아 흥분됩니다.

오시는 강사님들에게 하나님께서 전무했던 은혜로 기름 부어주시기를 중보하고 창립 10주년을 맞아 드려지는 세인 공동체의 구약 톺아보기 사역이 한국교회를 거들 떠 보지도 않게 하는 작금의 기가 막힌 시대에 막말 공세로 인해 대 사회적 먹구름을 더 짙게 드리운 몇 몇 참담한 일들을 걷어 내고 엘리야가 엎드린 갈멜산 사역처럼 주존심(主尊心)을 회복하는 희망을 노래하는 수문(water-gate) 앞 광장 사역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