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목회자들에게 잘 알려진 신약학자 중에 한 명이 노던 칼리지(Northern College)의 스캇 맥나이트 교수입니다. 오래 전 그가 쓴 ‘배제의 시대, 포용의 은혜’를 읽다가 밑줄을 그은 단어가 있었습니다. ‘페리코레시스’(스캇 맥나이트, “Embracing Grace”,아바서원, p,55) 그에 따르면 이 단어는 ‘둘레’를 의미하는 ‘페리’(peri)’ 라는 단어와 ‘주위를 뱅뱅 돌며 춤을 추다’의 의미인 ‘코레시스’(choresis)가 합쳐진 합성어로 설명합니다. 맥나이트 교수는 이 점을 감안하여 ‘페리코레시스’를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부연했습니다. 본인이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이자 설교자인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를 분석한 논문을 보게 되었는데 창조라는 카이로스의 위대한 사건은 이 사건이 하나님의 본질이라는 것을 전제할 때 역사의 현장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상호 침투’하고 ‘상호 내재’하는 협력으로 이루신 쾌거임을 적시한 것입니다. 저 역시 의미 있게 이 글을 읽었기에 이 단어를 때마다 상기하곤 했는데 지난주 목요일 DPA 사역에 한 강의를 맡아 섬기러 갔다가 아주 자연스럽게 이 단어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DPA(Disciple Pastoral Academy)는 신실한 동기 목사가 본인이 시무하는 교회를 건강한 교회로 만든 제자훈련의 한 방법론으로 개발하여 목회 현장이라는 정글에서 분투하고 있는 후배 목회자들(초교파적으로)에게 어떻게 하면 사람을 많이 끌어 모을 수 있는가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닌, 내가 목사로서 어떻게 서야 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고 격려해 주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아름다운 사역입니다. 기실, 제가 원하는 후배 사역자들을 향한 방향성에 너무 흡족하고 더불어 부합한 내용들로 채워져서 기꺼이 무언가를 주겠다는 의지로 갔다가 받고 온 은혜가 갑절이어서 황망할 정도 감사했습니다. 참여한 훈련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면면을 자랑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지만 차치하고, ‘페리코레시스’의 역동을 이루고 있는 스텝의 모습이 귀하고 귀해 지면에 담아 봅니다. 동기 목사와 같은 교단에서 선후배 관계로 만났지만 이후 제자훈련이라는 같은 공통분모로 더 강하게 묶여진 세 사람(김동오,오생락,조장현목사)의 협력을 현장에서 보다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띠 띠워진 인간관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페리코레시스’의 ‘상호 침투와 상호 내재’라는 감동의 드라마를 한편 감상하고 온 감동은 저에게 너무 컸습니다. 서로의 장점은 격려, 칭찬하고, 단점들은 쓸어 담아 일소하면서 한 가지의 분명한 목적인 후배 목회자들에게 쓰러지지 않고 이 마지막 시대에 그루터기 같은 동역자들로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스텝들의 그 섬김의 페리코레시스는 한 동안 저를 은혜의 여운이라는 감옥에서 포로로 만들 것 같습니다. “김동오 선배님,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것을 선배님의 삶으로 배웠습니다. 오생락 목사, 친구지만 머리를 숙여 존경의 표를 한다. 너를 만난 것이 내겐 기쁨이다. 조장현 후배님, 내 사랑했던 직전 교단에 후배님 같은 사역자가 있는 것에 안도했습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세 분의 ‘페리코레시스’는 환상적이었습니다. 행복한 사역이 지속적으로 승리하기를 기대하고, DPA를 통해 숨통이 끊어질 것 같은 조국교회가 다시 한 번의 ‘루하흐’의 깊은 들숨과 날숨으로 큰 군대를 이루기를 두 손 모아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