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의 어머니를 뵙고 오겠습니다.
10년 전, 교회를 개척하고 열악했던 2층 건물에 세 들어 살았을 때 교우들을 기죽이고 싶지 않아 열심히 뛰었던 잔상들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나누는 것이 교회로서의 자존감을 갖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기도 했기에 그 사역에 집중했지만 교회를 섬기는 목사로서 성도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사역 또한 바로 주는 사역이라고 확신했기에 그렇게 분주하고 민감하게 노력했습니다. 아프리카 우물 파기 사역을 펼쳤고, 제천 지역 푸드 뱅크에 기부도 하고, 독거노인들을 초청해서 위로하는 사역도 하고, 관내 차상위계층 가정을 골라 겨울나기 프로젝트로 집수리를 전체적으로 감당하는 일도 했습니다. 사랑의 연탄 나누기, 장애우 돕기, 소녀 생리대 지원 등등 나름 사역의 기쁨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말로 힘이 닿는 데로 최선을 다했고, 더불어 이런 사역의 시너지는 결국 이타적인 교회의 정체성을 우리 교회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고 또 잘 자리 매김 해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달려온 지난 10년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런 사역과 맞물려 제 스스로 참 잘했다 싶은 것 중에 하나가 위안부 어르신 돕기였습니다. 앞에 열거한 사역 중에 웬만한 일은 거의 대부분 가시적 교회의 로컬을 떠나지 않고 진행했던 것 같습니다. 허나 위안부 어르신 돕기는 유일하게 로컬을 떠나 직접 찾아간 사역이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이 마땅한 예의라고 생각했고, 도무지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을 당하신 어르신들의 손을 잡아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몇 푼 안 되는 물질을 온라인상으로 보내는 것은 보내는 자의 입장에서 편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눔의 집을 방문할 때면 언제나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역만큼은 직접 현장에 달려가 어르신들의 얼굴을 뵙는 것을 전제하여 진행합니다. 지난 주간이 고난 주간이어서 섬기는 교회에서 저녁 집회를 했습니다. 교우들이 집회 헌금을 정성으로 드렸습니다. 이유는 이 헌금은 나눔의 집에 기부하는 헌금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전혀 반성할지 모르는 일본이라는 괴물에게 처참하게 짓밟혀 평생 동안 고통을 갖고 살아오셨던 어르신들을 방문하여 잘 살펴드리지 못함에 대해 삼가 죄송한 마음을 전해드리고 오려 합니다. “국가나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justice)다.” 기독교 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버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한 말입니다. 이 말을 굳이 인용한다면 희생당한 어르신들의 그 고통을 누구보다도 더 감싸주어야 하는 국가에 친일적인 잔재를 갖고 있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몇 몇 위정자들이 자행한 어처구니없는 일로 더 큰 아픔을 당하신 나와 당신의 어머니들을 생각할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가눌 길이 없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따스하게 손 잡아드리는 것이기에 직접 방문하려고 합니다. 부활의 절기입니다. 차제에 가슴으로 울며 살고 계신 남아 계신 어머님들께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이 있기를 간절히 두 손 모아 화살기도를 드려 봅니다.
사족 하나, 고난주간 동안 곤비한 육체, 그리고 바쁜 일상 중에도 순종하는 믿음으로 자체 집회에 참석한 세인 지체들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흔적을 가진 가장 아름다운 보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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