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개월 전부터 왼쪽 어깨와 목 주변을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심한 통증이 느껴져 잠을 잘못 잤나 싶어 파스도 붙여보고 목 안마기도 사용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지난 목요일 아침은 통증이 조금 더 심해져 늘 다니던 정형외과에 마음먹고 진료 차 다녀왔습니다. “목사님, 목 경추 5번, 6번이 염증으로 인해 신경이 많이 눌려 있는 목 디스크 초기입니다. 신경박리술 시술을 받아야 될 것 같습니다. 어깨에 석회석건염으로 보이는 조그만 돌멩이도 예전처럼 그냥 있고요.” 해서 내친 김에 시술을 받았습니다. 처음 받아보는 시술이기에 무척이나 긴장했지만 뒤로 미룰 수 없을 것 같아 목 부위에 마취 주사를 맞고 통증이 심한 5,6번 목 경추 신경을 누르고 있는 염증을 제거하는 박리술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성공적으로 시술을 해 준 원장님이 이렇게 말하며 저에게 몇 가지를 당부했습니다. “목사님, 이 부분에 디스크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은행원, 저 같은 의사, 사무직 관리직원, 교사, 목사 등등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정신적 노동에 종사하는 분들입니다. 해서 직업이기에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몇 가지만 잘 실천하시면 예후가 좋아집니다. 첫째, 스트레칭을 생활화하는 것, 둘째, 사우나 자주하기, 셋째, 자리에 2시간 이상 오래 앉아 있지 않기입니다.” 첫 번째, 두 번째는 나름 제가 좋아하는 것이기에 지금까지 해 온 것을 그대로 실천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문제는 세 번째 당부였습니다. ‘2시간 이상 자리에 앉아 있지 말기’를 곧이곧대로 실천하면 실상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을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일이 그냥 순식간에 되는 일이 아니기에, 세 번째 책 집필도 하고 있는데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기에, 주어진 독서 일과와 성서 읽기 역시 서너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어느 것 하나 녹록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여보, 이제는 그렇게 하나, 하나 고장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잖아요. 때마다 수리해서 써야지.”라고 병원에서 돌아온 저를 위로하지만 그래도 씁쓸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친구가 SNS에 이런 짤막한 글을 남긴 것을 읽다가 많이 공감했던 적이 있습니다. “1961년 생, 난 지금 다시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여기도 고장, 저기도 고장.’ 이게 현실인데 무엇을 다시 할 수 있을까를 아무리 궁리해도 명쾌해지지 않는 상황 때문에 아주 가끔은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아내 말대로 그때마다 수리하며 살면 되지 뭐 하고 자위하지만 그래도 그런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식탁에 날마다 조금씩 수가 많아지는 건강보조식품과 하루도 거르면 안 되는 약이 담겨 있는 봉지들을 보이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잡이하면서 한 가지를 다짐해 봅니다. ‘오늘에 최선을 다하자!’ 지난 주간 읽은 벼락 하나, “시간의 두 개의 흐름은 균형을 이루고 있단다. 한쪽의 흐름을 멈추게 하면, 다른 쪽의 흐름도 없어지지. 그럼 시간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거야….”(미하엘 엔데, “모모”,p,322) 이제 조금씩 고장 나고 있는 육체의 나신(裸身) 앞에 손 쓸 없는 나약함을 갖고 있는 ‘나’이지만, 지금 ‘나’를 통해 ‘세’(世) ‘인’(認)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것은 젊은 시절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었다고 자위하기에 1961년생으로 살아온 시간의 흐름은 균형 있게 흘러온 것 같아 다시 행복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 주간 바울의 고백이 더 귀하게 들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