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선생님이셨던 김균진 박사께서 수업 중에 이런 당신의 느낌을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난 화장(火葬)까지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어쩔 수 없이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모시는 방법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고인을 추모하는 최소한의 토지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자손들이 고인을 찾아와 앉은 자리에서 추모할 수 없는 장묘 문화에 대하여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교수님은 진보적인 사상을 갖고 있는 신학자이었기에 당신의 발언을 들을 때 조금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오히려 화장 문화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옹호할 줄 알았던 선생님께서 그렇게 발언하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이천 호국원에 모셔져 있는 아버님과 어머님과 장인, 장모님이 모셔져 있는 서울 현충원의 납골당을 방문해서 인사를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느낌 하나, 엄청난 성묘 인파들로 인해 조화 한 송이를 드린 이천 호국원은 그래도 양반이었습니다. 현충원은 개별 납골당에 헌화를 드릴 수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느낌 둘, 아주 형식적인 추모를 드릴 수밖에 없게 된 지금의 추세에 왠지 모를 섭섭함이 밀려왔습니다. 명절에 부모를 찾아뵙지 못한 자식들은 휴대폰 동영상으로 세배를 드리며 아쉬움을 달래는 오늘, 조금 더 진보된 모습은 화상 통화로 명절 당일에 세배를 드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종교철학자인 박일준의 말을 인용해 봅니다. “미디어의 변화는 곧 수용 주체가 세계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를 동반하며, 단지 인식의 변화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이 미디어를 통해 확장 또는 연장된다는 것을 함의한다.”(박일준, “인간지능의 시대, 인간을 묻다.”, 동연 간, 2018년,p,39.) 글을 읽다가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담론임을 인정했습니다. 헌데 저에게는 시대를 간파하는 한 종교철학자의 지론이 이미 성큼 다가온 ‘포스트 휴머니즘 혹은 트랜스 휴머니즘 시대’라는 거대한 괴물의 이야기로 곱지만 않게 보이는 목사라는 직업의식이 발동하는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이러셨다. 할머니가 이런 분이셨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이렇게 사셨단다.”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공간이 없는 형식적이고 요식적인 성묘를 명절을 통해 경험하면서 변화, 변화, 다가올 상상하지도 못할 변화에 민감하게 대비하라는 한 학자의 외침이 왠지 쓰라리게 들린 것은 모난 성격을 가진 저만의 소회일까 싶어 두려워졌습니다. 인천 문학산에 친할머니의 유해가 모셔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부모님들과 문학산에 올라 성묘하며 할머니의 사랑을 반추하며 돌아보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무척이나 사랑하셨던 할머니, 노년에 치매에 걸리셔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회귀하시는 통에 며느리가 밥을 굶긴다는 애매한 소리를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신 탓에 어머니 속을 적지 않게 썩이셨던 웃픈 이야기를 저는 산에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웃픈 추억담이 왜 이리 그리운지…. 이렇게 조상들의 은덕을 나누는 담소마저도 나눌 공간이 사라진 지금, 그래서 그런지 저는 그 옛날, 문학산에 올라 가 길게 뻗은 잡초들을 벌초하며 할머니의 정을 느꼈던 그때가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매년 맞이하는 명절, 나도 모르게 매번 느끼는 2%의 아쉬움 때문에 절절한 내리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내 대(代)가 그러니 후대(後代)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이렇게 넋두리하니 이제 저도 늙긴 늙었나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