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첫 사랑의 추억이 있습니다. 고등부 1년 후배였던 아이였습니다. 고등부 실에서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치던 아이를 처음으로 보면서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후 온통 그 아이의 생각으로 사랑앓이를 시작했습니다. 하루의 모든 시간이 그 아이 때문에 존재하는 것 같았고, 앉으나 서나 그 아이가 저를 점령했던 그 시절이 저에게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한 편으로 촌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간직하고 싶은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첫사랑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설레는 노래이고. 시입니다. 그래서 첫 사랑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지난 화요일, 대학원 종강을 하는 날, 너무 많은 눈이 내리는 것을 본 아내가 걱정이 된다고 학교까지 동행해 주었습니다. 평소 운전을 싫어하는 저이기에 아내가 저 혼자 보내놓고 나면 안심이 안 된다고 길을 나선 것입니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제천에 내렸던 눈을 걱정하며 조심조심 운전해 도착을 했습니다. 주차장에 도착을 하면서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주차장에 수북이 쌓여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눈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달 전, 소천 한 권영옥 집사 외에는 딱히 평일에 교회 주차장에 쌓인 눈을 치우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낸 지체들이 많지 않았던 터라 눈을 치운 지체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뒤, 화요일 저녁에 교회 주차장 눈을 치우며 수고한 주인공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지레짐작한 지체라고 생각을 했지만 마침 확인을 하고나니 더 더욱 그 지체에게 감동이 되었습니다. 아주 공교롭게 그 지체의 눈치우기 이후 여러 지체들이 눈치우기에 관심을 갖는 신기한 일도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주차장에 눈 치우는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고 치부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교회봉사마저도 머리를 굴리며 소위 말하는 ‘낄끼빠빠’ (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지기)가 대세가 된 작금이기에 담임목사에게 그 지체는 너무 큰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동역자로 서주었습니다. 지금 그 지체는 첫사랑의 뜨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만나고 경험하는 여러 일들에서 마치 첫사랑의 그 감정을 느끼고 있는 지체이기에 아마도 교회를 향한 봉사마저도 자원하는 마음의 뜨거움을 갖고 기쁘게 감당해 주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바울이 사역했던 일체의 교회들 중에 유독이 큰 사랑을 베풀어준 교회공동체를 호명하며 다른 여타 교회도 본받을 것을 간접적으로 압박했던 주인공 교회가 있었습니다. 빌립보교회였습니다. 작은 교회였지만 바울이 원하는 방향성을 갖고 흔들리지 않으며 경주해준 빌립보교회, 바울의 선교 사역을 위해 한 번 정한 물질적 지원을 중단하지 않고 지원했던 빌립보 교회였기에 이렇게 뜨거운 사랑을 표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목회를 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이 시작이 뜨거웠던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허나 몇 날이 못 가 그 뜨거움이 싸늘한 재로 변한 자들을 수도 없이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부족한 종이 그를 위해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너무 마땅합니다. “주님, 첫사랑의 감격에 빠진 지체가 그 사랑, 변하지 않고 이어지게 하옵소서!” 이제 이순(耳順)의 나이를 낼 모레 앞두고 있는 저이지만 아주 가끔, 채○○ 이는 잘 지낼까? 하고 첫사랑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ㅎㅎ. 첫사랑이 참 풋풋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