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여행을 하면서 미국 OMS 선교사로 파송되어 있는 우리 교회 협력 선교사인 김은진 목사로부터 SNS 전화를 받은 지 거의 두 달이 되어 갑니다. 전화의 내용을 요약하면 남편이 외국인 예배에서 설교 디렉터를 맡아 사역을 하게 되었는데 이방의 땅이라서 마땅히 가지고온 책도 변변치 않고 볼만한 자료들도 마땅치 않은 데 세인 교회 목사가 보내주는 주일 설교 동영상을 보고 많은 도전을 받으니 선배 목사가 이전에 했던 설교 원고를 보내주시면 설교를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으니 부탁해 보라는 전언이었습니다. 특히 갈라디아서에 관해 많이 관심을 갖고 있는데 설교 원고가 있는지 알아보라는 뭐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김 목사에게 스친 것이 저와 함께 사역을 할 때, 제가 갈라디아서 강해를 단기간 내에 했던 것이 기억이 났고 그래서 용기를 내 저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사정이 이 정도가 되면 후배들을 위해 제가 당연히 원고를 보내줄 것으로 믿었는데 그 믿음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거의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김 목사(진해교회에서는 전도사 시절)가 들었던 갈라디아서 강해는 이미 당시의 성경적인 해석이었기에 지금 해석으로 매치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업그레이드 버전이 필요한 상태였기에 내놓을 만하지 않은 것이 이유였고, 두 번째 이유는 원고를 그대로 보내는 것은 후배들의 공부와 진보에도 독이 되면 되었지 약이 되지 않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해서 거절의 의사를 보내면서 김 목사에게 약속한 것이 있었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세인 교회 교우들과 2018년형 갈라디아서 여행을 진행할 예정이니 보폭을 맞추라는 권면 겸 약속으로 해주었습니다. 제 컴퓨터 설교 파일을 열면 20년 전에 진해교회를 섬길 때 특별 새벽기도회 시간에 설교로 섬겼던 원고가 74page 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당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 원고를 지금 들춰보면 그 때 이런 설교를 들으면서도 아멘 해준 진해 교우들은 성자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허접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렇게 접했던 갈라디아서를 다시 손에 잡은 지 오늘 주일이 4주째입니다. 4주 동안 매 주 설교를 준비하기에 앞서 나를 돌아보면서 반추한 소회가 있습니다. 20년 전 그때보다 20년 후 지금이 훨씬 더 하나님의 말씀이 부들부들 떨린다는 두려움입니다. 젊었을 때의 객기, 서투름, 미 성숙된 자아, 그리고 볼품없는 지성으로 사로잡혀 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무서움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는 볼썽사나운 교만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외형적으로 훨씬 더 연륜도 강해졌고, 목회의 스킬도 여유로워졌고, 담대해졌는데 역으로 말씀 앞에 부들부들 떨리는 것은 이제야 하나님의 선언인 ‘다바르’ 앞에서 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작은 자인지를 어렴풋하게 데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후배 목사 부부에게 청을 거절한 것은 너무나 잘한 일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후배 목사 부부가 머나먼 이방의 땅에서 함께 여행할 갈라디아서 산책은 그래서 저 또한 영적으로 흥분되고 또 흥분되는 사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행에 필수적인 소지품처럼 섭렵하고 있는 숭실대 권연경 박사의 ‘갈라디아서 산책’ 프롤로그에서 그는 이렇게 이 여행을 하게 된 동기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해수면보다 더 낮은 호수처럼, 세속사회의 상식보다 더 아래로 내려간 ‘한국교회’의 의식과 삶의 수준은 교회에 대한 실망을 넘어 복음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곤 한다. 한편으로는 절망스런 상황이지만,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복음은 언제나 그 주변 사회의 ‘소식’들과 경쟁하며 전해져 왔다. 물론 이 경쟁은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에 가장 치열한 전선을 형성한다. 세상의 편리한 소식과 복음을 뒤섞으려는 유혹과, 그 유혹에 맞서 복음을 수호하려는 노력 사이의 전투다. 갈라디아서는 이런 투쟁에 대한 가장 생생한 기록의 하나다.”(pp,11-12) 동의하며 나도, 세인지체들도, 미국에 있는 김 목사 부부도 치열하게 투쟁하는 갈라디아서 여행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 본다.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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