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강해 1차 평가
신학교에 입학 할 때 저는 편입학으로 입학을 했기에 성경시험을 치렀습니다. 해서 합격을 위해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후담입니다만 목사 고시를 치를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 것 같습니다.(ㅎㅎ) 벌써 37년이 지난 일이지만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항상 느꼈던 소회 중에 하나가 66권 중에 욥기 서는 저에게 무거움 짐이었다는 점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던 학부나 대학원 코스워크에서 욥기를 만나면 한쪽 구석이 여전히 허전했고 많은 아쉬움을 느끼게 했던 난코스였습니다. 왜냐하면 욥기 42장의 해석에 도착하면 설교자들과 관련된 책들은 항상 욥에게 궁극적 승리를 부여했고, 의인의 고난은 그러므로 아름답다는 식으로 해석자들이 결론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헌데 저는 그렇게 해석하는 선생님들의 욥기에 대한 해피엔딩 스토리를 동의하지 못했기에 항상 불편했습니다. 이렇게 저에게는 부담 천만인 욥기를 무모하게 강해하기 시작한 지 이번 주 수요일이 되면 25번째를 맞이합니다. 겨우 10장을 섭렵한 진도 속도를 내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강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첫 번째 소회를 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① 욥의 인생이 해피엔딩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던 전통적인 해석과는 다르게 결말이 날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입니다. ② 욥기 1:1절에 언급된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는 시작 멘트는 주전 6세기 후반부터 5세기 전반으로 추측되는 욥기를 편집한 시기에 편집자들이 고민 끝에 내린 궁색했던 표현이 아니었을까 하는 탐색입니다. ③ 이미 알려진 거의 완전무결한 신앙의 롤 모델과 같이 평가된 욥이 얼마나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는 의미 있는 성찰입니다. ④ 전통적인 해석에 길들여져 있는 독자들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욥의 세 친구들이 언급했던 욥에 대한 성토 중에는 상당수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들이 무궁무진하다는 뜻밖의 은혜도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교우들의 평가도 아직은 상반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저에게는 있습니다. 왜 이미 알고 있는 욥에 대한 해석과는 담임목사가 다르게 해석하지! 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부류와 그 반면, 신선하게 해석을 받아들이며 같이 따라와 주는 편도 있기에 말입니다. 해서 설교를 준비하는 저는 매 주 수요일마다 긴장하며 욥기 강해를 만나고 있습니다.
천만 다행인 것은 네티즌들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라는 점입니다. 욥기강해 설교 원고는 유일하게 블로그에만 게재하기에 글로 만나는 네티즌들이 조금은 색다르게 욥기 강해 글을 읽어주는 것 같아 내심 안심이 되지만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설교 원고를 준비하고 탈고하는 것이 이제는 습관화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제 25% 정도를 소화한 욥기강해는 저에게는 여전히 적지 않은 부담입니다. 허나 신학교 때부터 항상 편하지 않게 결론을 맺은 것에 대한 한풀이(?)를 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을 내딛고 있어 마치 살얼음판을 딛고 있는 심정은 분명하지만 이런 지난(至難)한 과정을 지나다보면 어느 정도의 만족한 만한 가시적 욥기 공부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오늘도 욥기에 관한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습니다. 차제에 목사도 걸음 걷기가 쉽지 않은 이 여행에 나름 기대감을 갖고 함께 걷고 있는 세인 지체들을 강복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들이 매주 수요일에 치열하게 만나고 있는 욥이 오늘 바로 ‘나’이기에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