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학원에 강의를 시작한 지 한 달 반이 지났습니다. 대학원이라고는 하지만 76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파악하고 그들과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거의 불가능함을 알기에 외래 강사로서 그냥 내게 주어진 맡겨진 강의에만 충실하자는 마음으로 달 반을 달려온 것 같습니다. 강의를 진행하며 원우들의 수업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주 옛날 학창 시절의 추억들이 떠올라 혼자 속으로 웃는 웃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어디에나 있는 군계일학과도 같은 자태의 뛰어나 보이는 학생들입니다. 수업 중에 자세나 혹은 제가 요구하는 과제물들을 감당해 나가는 일련의 일들을 지켜보면서 관심을 갖게 만드는 탐나는 학생들이 보입니다. 수업 중에 핵심적인 키워드에 집중하여 그것에 대한 신학적, 성서적 올곧음을 찾아내려고 긴장하고 있는 학생들이 보입니다. 이제 이번 학기를 마치면 현장으로 나가야 하는 사역의 부담감을 충분히 인지하고 곰비임비 시비를 걸려는 것이 아닌 현상적으로 마주쳐야 할 일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공부하려는 몇 몇 학생들이 보입니다. 중간고사를 대치하는 과제물로 내준 북 리뷰는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기실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인데 제출된 과제물을 받아본 결과 강사가 요구한 각 필드에 맞는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사람들이 바로 이 몇 몇임을 알고 다시 한 번 옛 학창 시절 생각의 기억이 시나브로 떠올라 헛웃음을 냈습니다. 학기말 고사를 대신하려는 대체물로 맨 처음 계획한 것이 소논문 작성 페이퍼였습니다. 훗날 논문 작성을 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지요. 허나 너무 어렵다는 학생들의 불만 섞인 ‘떼창’으로 인해 조금은 쉬운 페이퍼 변경하자 도리어 처음 요구한 페이퍼로 자신은 기말 과제를 내면 안 되겠는가를 반문하는 원생도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학생도 몇 몇에 속해 있었습니다. 동료들이 그를 알면 치사한 인간, 이기적인 배신자(?) 등등 비난의 화살로 봇물 터트리겠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학문적인 열정, 쉽게 가지 않으려는 오기, 선지동산에 있는 동안이라도 지성적 성찰에 게으르지 않겠다는 의지적 고집 등등이 그들에게 보여 강의하는 사람으로 싫지만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바로 그들이 또 이 기막히고 참담한 교회의 현 주소 안에서 이사야가 말한 그루터기 같은 남은 자로 서서 다시 한 번 조국교회를 든든하고 건강한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줄 동냥들임에 틀림없기에 말입니다. 피땀 흘려 조국교회를 세워놓으신 선배 목사님들이 뿌려놓은 선한 씨의 열매를 먹고 살아온 운이 있었던 저는 선배들이 그렇게 심으셨던 또 다른 씨앗을 후배들을 위해 뿌려 놓지 못한 공범자인 것을 알기에 너무나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이 넘칩니다. 이제 은퇴라는 단어를 가끔은 되 뇌여도 어색하지 않은 연륜이 된 지금, 해서 마지막 남은 봉사는 조국교회를 위한 건강한 후배 동역자들을 키워내는 일이 아닌가 싶어 최선을 다해 보고자 합니다. 언제, 어디나,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이 주목하고 계신 그 사람은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사람은 언제나 아놀드 토인비의 말처럼 ‘창조적 소수’라는 것을 저 또한 주목합니다. 바라기는 한 학기 저와 만난 원생들 중에 이런 소수들이 불일 듯 일어나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들이 마지막 희망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