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6:29절 때문에
주중에 독립교회 연합회 제천 지역 목회자 모임이 있었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교제하던 중에 개 교회에서 새신자부를 맡고 있는 여 목사님 한 분이 본인의 목양 중에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꼈던 한 사역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담당하고 있는 필드에서 만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저는 너무 많이 느끼고 경험했습니다. 불신자들보다 신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 분이셨습니다.” 동역자의 이 선명한 고백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맥박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천에 사는 교회에 다니는 참 많은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 진짜로 갈망하는 것, 진짜로 소원하는 것은 명품 설교를 하는 설교자, 하드웨어가 기가 막히게 구비된 가시적 교회, 소프트웨어가 아름다운 교회 신자들의 면면, 종교가 문화인 세태에서 일주일 한 번 즐기고 느끼고 찬사를 보내는 종교적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예수님이었다는 토로는 저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 고향교회 사모님이 신학대학교 입학 기념으로 선물해 주신 책이 고 김준곤 목사께서 쓰신 ‘예수칼럼’이었습니다. 지금도 제 서재에 너무 많이 끄집어내 읽어서 빛이 바래 너덜너덜한 채로 남아 있는 이 책에 나오는 한 칼럼은 신학교를 입학하는 시기에 저를 송두리째 흔들었던 제 인생의 글로 뇌리에 강하게 담겨 있습니다. “버트란트 러셀과 쌍벽을 이루던 영국의 저명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교수가 폭설이 내려 길을 분간할 수 없는 런던의 언덕길을 가는데 한 노파가 눈길에 미끄러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부축해서 구조했더니 ‘고맙기도 해라, 예수 믿는 분인가 보죠?’ 했다. ‘나는 예수를 안 믿습니다.’ 교수의 말에 노파는 다짜고짜로 ‘여보시오, 어쩌려고 다 늙은 사람이 예수를 안 믿소. 나는 아까 죽으면 주님 만날 것을 생각하고 눈 속에서 찬송을 불렀는데….’ 화이트헤드가 숙연해졌다. 내 지식뿐 아니라 영국 천지의 학문 속을 다 뒤져도 저 노파가 가진 것은 없었기에 그는 교회로 갔다. 4주 내내 목사는 헤드를 의식하여 철학 설교를 했다. 설교를 듣던 헤드가 목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목사님, 그런 것은 내가 더 많이 압니다. 내가 찾는 것은 저 노파의 예수입니다.”(김준곤, ‘예수칼럼’,p,123) 목양의 현장에서 30년을 버텼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버텼습니다. 본질을 말하면 비 본질을 말하라고 압박하는 정글, 골리앗을 쓰러뜨려야 한다고 외치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엘리압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명목적 좀비 신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드는 정글,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식을 이 땅에서 살아내는 삶을 살았는가에 천착해야 할 크리스티아노스의 치열함은 제쳐두고, 내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살았는가에 천박하게 더 목숨 건 자들이 헤집는 정글에서 30년을 버텼습니다. 이 지난하고 살벌한 영적 싸움터에서 그래도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한 것이 있다면 전술한 예수, 바로 그 분이 나의 주군 되심과 너의 주군 되심에서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게 하신 하나님의 개입하심이었습니다. “목사님, 제천에 사는 신자들 중에 상당수, 아니 너무 많은 이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예수님이었습니다.” “목사님, 그런 철학적인 설교는 내가 당신보다 더 잘 압니다. 내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저 노파가 생명을 걸고 있는 예수입니다.” 그래서 그랬나 봅니다. 지난 한 주간, 사도행전 26:29절 때문에 더 심장 박동 수가 빠르게 뛴 심장이 뛴 시간을 보내며 옷깃을 다시 여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