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아버지, 아들과 엄마
“2009년 겨울에도 지금처럼 마음이 가난했었습니다. 큰 은혜로 지금까지 지내오게 하셨고 앞으로의 삶속에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어떠한 길로 인도하시던 그건 최선 일 거라 확신합니다. 각종 검사와 진단과 치료, 그 모든 과정을 앞둔 이 시점에 저희 아버지께서 전심으로 하늘에 소망을 두고 ‘구원 그 이후의 삶’으로 무장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시간들을 담담히 수긍하며 담대함으로 저를 위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종구 집사님의 큰 딸이 지난 주간에 저에게 보낸 메시지의 일부를 조심스럽지만 교우들에게 공개한 이유는 근래 받아본 편지 중에 이만한 믿음의 편지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종양이 재발하여 또 다시 녹록하지 않은 치료 과정을 앞두고 있는 아픔 속에 있는 딸의 눈물 어린 편지였지만 받고나서 왠지 저에게는 역설적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듯 큰 기쁨이 몰려왔습니다. 구구절절 사랑하는 친정아버지를 향한 아름다운 딸의 그 진정성이 믿음으로 함께 승화되어 저에게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으로 진행 한 강좌에 강사가 가지고 온 동영상 중에 딸과 함께 하는 아버지들의 그 어색한 동거를 보면서 어찌 보면 어려서 아버지의 딸 사랑과 자라서는 성숙하게 피어난 그 사랑을 받은 딸들의 아버지 사랑을 확인하며 세상에 존재하는 참 아름다운 사랑의 한 단면을 진하게 느끼며 감동을 받았는데, 소개한 편지에서 저는 그 사랑의 절정을 보는 것 같아서 참 오랜 만에 깊은 감동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중보로 사랑하는 지체의 무게를 종도 함께 지려 합니다. 지난밤에 아내가 끙끙 앓았습니다. 손목에는 파스를 연신 붙이며 그 아픔을 감내하였습니다. 며칠 전부터 떨어져 있는 아들 생일을 준비하는 일 때문에 아내가 분주했습니다. 다 큰 놈, 그래서 이젠 장가갈 나이에 선 아들의 생일에 웬 호들갑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단지 생일만을 위한 것이라면 저도 유별나다고 동의하겠으나 소리를 치지 못하는 것은 병약하신 장모님에 계시는 처갓집에 더부살이 하는 신세의 아들이기에 때때마다 각종 살림을 장만해야 하는 일은 아내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올라가는 김에 또 한 달여 아들이 먹을 이모저모의 반찬들과 또 이것저것을 준비하는 아내가 진 빠지게 일을 하는 것을 옆에서 보아야 하는 저는 왠지 아들놈이 미워집니다. 서울로 올라가는 아내가 승용차에 이모저모를 실었는데 마치 이사 가는 것 같아 밤새 끙끙 앓던 아내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왔습니다. “차라리 장가를 보내는 게 낫겠다. 장가를. 내가 치부책에 다 기록해서 며느리한테 다 받고 만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실없는 소리를 해 보았습니다. 아들이 자기 엄마가 이렇게 사랑한 것을 알까? 아들은 장가를 가면 정말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엄마의 사랑을 1/10이라도 알까? 알 리가 있겠습니까?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겠지요. 자기 마누라만 눈에 보이겠지요. 그러다보니 순간 이런 생뚱맞은 생각을 하고 웃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딸을 열 명쯤 나을 것 그랬다고. 아들보다는 그래도 딸이 훨씬 더 나은 것 같아서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 근래는 왜 이리 섭섭해 보이는 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목양터의 이야기 마당을 쓰는 목요일 이 시간, 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이 웬수같은 아들놈 생일이 내일인데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해 미안하고 후후 그리고 아들이 보고 싶으니 말입니다. 도대체 이게 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