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 그랬어요! 아주 오래 전, 이동원 목사의 책에서 이런 웃픈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주일학교 예배 시간에 담임목사께서 격려차 참석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날 목사님의 설교 텍스트는 여호수아 6장이었고 설교 제목은 ‘여리고 성 무너뜨리기’ 라는 설교였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이어졌습니다. 여리고성이 7일 만에 무너졌다고. 그런 뒤,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정말로 무너뜨리기 어려운 이 성을 누가 무너뜨렸을까요?” 그러자 한 어린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안 그랬어요.” 순간 다른 아이들도 서로 얼굴을 보면 정색하며 말했습니다. “나도 안 그랬어.” 담임목사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주일학교 부장 장로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부장 장로님도 손사래를 치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아이들 말은 정말입니다. 믿어주세요. 그리고요, 저도 안 그랬어요.” 웃자고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 있는 가능성이 짙은 가십(gossip)성 이야기이지만 참 많은 것을 말해주는 의미 있는 예화로 저는 기억합니다. “목사들아, 잊지 마라. 너도 죄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하나님이고, 너는 달리 어찌할 수 없는 죄인이다. 아론의 두 아들을 잊지 마라.”(pp.78-79) 로고스 서원 대표로 있는 글쟁이 김기현 목사가 쓴 ‘말씀 앞에 울다.’ 에 기록된 비수의 글입니다. 레위기 16:2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형 아론에게 전하라고 한 메시지 중에 법궤가 있는 지성소 안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함은 물론 들어와서 죽을 수 있음을 명심하라는 말씀에 대한 부연인 셈입니다. 목사를 비롯한 일체의 신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하는 직격탄이기에 들으면서 강펀치를 맞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목회를 하며 가장 힘든 것은 말씀에 대한 주관화 음모와 3인칭 복수화의 작태입니다. 누구든지 예외 없이 이런 자들의 행태는 말씀을 즐깁니다. 즐긴다는 말은 주어진 메시지가 나와는 상관없다고 믿는 해괴함을 담보합니다. 지금 옥좨는 말씀이 나에게 무슨 관련이 있냐고 대들기까지 합니다. 나 정도만 신앙생활하면 특 A⁺라고 자칭하는 교만함까지 있습니다. “나는 안 그랬어요. 내가 무엇 때문에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여리고성을 왜 무너뜨려요. 난 절대로 그런 짓 안 했어요.” 기가 막힘, 속수무책, 대화불가입니다. 작년 친구 목사가 사석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새록새록 그리그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이 목사, 우리 교회 젊은 신자들이 카톡으로 나에게 그림을 보낸다. 지금 해외에 나와 여행 중이라고. 그러면서 잊지 않고 안부를 전한다. 주일 승리하시라고. 보너스 하나, 선물 하나 사가지고 가겠다고. 그림을 보면 그 날 혈압은 무한대 상승한다.”고. 가장 신앙이 있는 자의 겉모습으로 다가오지만 내 개인의 신앙, 종교적 권리에 대하여 간섭하지 말라고 압박하는 메시지 주관화의 주인공들, 3인칭 복수화의 달인들이 앞으로 한국교회라는 공동체를 더욱 휩쓸 텐데 이 기막힌 랜덤의 현장에서 목회해야하는 목사인 저는 그래서 더욱 다짐해 봅니다. 목사인 나부터 메시지를 철저히 객관화시키리라고, 목사인 나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결벽증처럼 1인칭 단수화시키겠노라고. 이 결심이 더욱 극대화되고 있는 작금의 영적 정황들을 접해서 그런지 벨사살이 본 것처럼 레위기 16;2절 말씀이 ‘메데 메데 데겔 우바르신’ 의 글자처럼 저에게 큰 글자로 보이는 것은 인지상정의 위로처럼 여겨집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레위기 16:2)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주일, 저에게 1인칭 객관화로 다가온 레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