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질
주간, 경북 영양에 거주하고 있는 이동화 권사님 가정을 심방하고 왔습니다. 1년에 한 번 들리는 곳이기에 의미를 가지고 다녀옵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경북 영양을 가려면 안동 시내를 거쳐 임하댐과 안동댐을 경유해서 꼬불꼬불한 국도와 지방도를 거쳐야 하는 수고가 있어야 했는데, 이제는 상주-영덕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무려 30여 분 정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수월함이 심방을 도와주었습니다. 두들 마을에 도착하여 권사님 내외분을 반갑게 맞아 교제를 했습니다. 예배를 통해 권사님 내외분과 깊은 영적 소통도 나누었습니다. 시골에 가야만 경험할 수 있는 시골틱(?)한 문 집사님의 사랑을 담은 정갈한 음식도 만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영양까지 배달된 강릉 산 테레로사 커피도 맛보는 이색적 경험도 했습니다. 벌겋게 익은 대추를 직접 따서 먹는 맛은 일품이었습니다. 예배 후, 정담을 나누던 중 문 집사님이 방앗간에서 만난 마을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어르신은 근처 마을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권사님이신데 말문이 열려서 정겹게 가족 이력을 내놓으셨답니다. 장남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둘째는 무엇을 하고 등등 그러다가 한 마디 몇 째는 어디에서 목사질을 하고…. 어르신은 자기 자녀의 일을 겸손하게 낮추시는 표현법으로 그렇게 말하신 것입니다. 이 말에 익숙하지 않은 문 집사님 왈, “아들 중에 한 명은 어디에서 목회를 합니다.”라고 말하면 좋을 걸 그랬다고 아쉬워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가 진짜로 목사가 목사질을 한다고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3D 업종인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방문한 영양 심방을 통해 그래도 아직은 목사질이 그런대로 보람된 사역이고 숨 쉴 만 하다는 자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200년 이상 된 고택들이 즐비하고, 작기 이문열 선생의 고향으로 유명세를 탔기에 군에서 유명 관광 인프라로 개발된 경북 두들 마을 중에서도 이 권사님의 고향집은 뚜렷이 그 권위에 있어서 압권일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이번에 심방 차 들렸는데 문 집사님이 거하는 안채를 너무 아름답게 리모델링해 놓은 광경이 넋이 나갈 정도로 고풍스러웠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헌데 그 예배는 입주 예배였습니다. 4월에 공사를 완료했는데 문 집사님이 입주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유인 즉은 담임목사와 함께 예배를 드린 뒤에 입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했습니다. “목사질, 그래도 아직은 해볼 만하다.” 뭐 그리 대단한 목사라고 입주을 위해 목사를 5개월을 기다려주는 신자도 있으니 말입니다. 목사도 얄팍한 성정이 있는 사람인지라 그렇게 예우해 준 교우가 너무나 감사해서 목회를 하면서 가장 사역에 힘이 되어 준 말씀을 뽑아 예배 텍스트로 정해 지체들을 위로하고 강복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지체, 그래서 표면적으로나마 소원(疏遠)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지체의 목사를 향한 그 따뜻한 배려에 그 영혼을 책임 진 목사로서 너무 감사한 심방을 마쳤습니다. 심방을 마치고 나오는데 고택을 14년 동안 지켜온 황돌이가 매우 고통스러워 보여 물었습니다. “집사님, 황돌이가 예전 같으면 짖고 난리가 났을 텐데 너무 조용하네요. 왜 그렇지요?” “목사님, 황돌이를 묻어줄 무덤 하나 만들려고 해요. 지금은 진통제로 버티는 데 이제 너무 늙어서 오늘, 내일 해요. 3일 동안 곡기를 끊었어요.” 뭐가 예쁘면 뭐도 예쁘다고, 황돌이가 고통스럽게 가지 않도록 별 기도를 다했습니다. (ㅎㅎ) 녹록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은 할 만한 목사질 중에 하나, 행복한 심방이 이 땅에서 목사로 살아가는 또 다른 의미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영양 두들 마을의 최고의 선물은 권사님 고택 앞마당에서 태우는 낙엽 냄새입니다. 그 냄새가 또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참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무작정 내려가 볼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