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저음’ 에 대한 네이버 어학 사전의 풀이입니다. 오늘은 이 단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화요일 저녁, 구원 그 이후 저녁 반 사역이 매주 마다 진행됩니다. 6명이 모이는 소그룹이지만 모임 자체는 얼마나 진지하고 귀한지 모릅니다. 근래에는 세 번째 독서 나눔을 하고 있는데 김기석 목사의 저서인 ‘삶이 메시지다.’를 가지고 속 깊은 토론과 나눔을 통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나눈 텍스트는 그 유명한 너희는 빛과 소금이라는 산상수훈의 정수(淨秀)와도 같은 마태복음 5장 본문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소금처럼 보이지만 소금이 아닌 이도 있고, 빛처럼 보이지만 빛이 아닌 사람도 있다. 모양은 닮았지만 실질은 다른 사람, 그리스도인의 외양은 갖췄지만 그리스도의 진정에는 이르지 못한 사람 말이다. 웨슬리는 그들을 가리켜 ‘절반의 기독교인’이라 했다. 절반의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이 아니다.”(p,111)
김 목사께서 기술한 이 대목에 이르러 지체들이 거의 대부분 두루뭉술한 신앙의 내 모양새에 통타(通打)를 당한 것 마냥 멘붕이었음을 토로했습니다. 아마 그러지 않아도 양다리 걸치고 있는 내 신앙의 회색적 자아 때문에 심히 괴로운 지경이었는데 그 상처 난 곳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은 휘저음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볼멘소리로 합창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휘저음’입니다. 이 상황을 나누다가 소그룹 지체들이 거의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저에게 항의(?)한 것이 이것입니다.
“목사님, 휘젓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가끔은 그냥 은혜 받는 말씀도 그립습니다.”
이 투정은 제 설교가 김 목사의 글처럼 은혜보다 휘저음이 많다는 에두름임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그냥 노력하겠다고 말해야 하지만 제가 이 질의를 받고 교우들의 마음을 헤아려 내비친 말이 이것이었습니다.
“앞으로는 김기석 목사의 책을 갖고 나누는 것을 그만하고 유기성 목사의 책 가지고 나누어야 하겠네요. 사람들이 말하기를 유기성 목사께서 쓰신 책들은 정말로 ‘부드러움 그 자체’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지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직업적(?) 멘트를 하고 난 뒤에 다시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묻죠? 휘저음은 은혜가 아닌가요?, 은혜와 다른 것인가요?”
참 아이러니하지요? 청파 교회 김기석 목사와 선한 목자 교회 유기성 목사는 전혀 다른 신학적 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감리교 신학대학교 동기인 걸 보면.
금년 초, 광화문에서 촛불 집회가 한참일 때 기독교 관련 저널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촛불집회에 대하여 별로 유쾌한 입장을 내놓지 않는 유기성목사에게 질문한 기자에게 답한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기석 목사는 저하고 신학교 동기입니다. 그러나 그의 사상과 신학은 저와는 다릅니다. 그가 생각하는 것과 내가 생각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러나 서로가 존중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드럽고 선한 말투의 메시지로 설교하는 유명 목사의 말을 굳이 인용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휘저음은 휘저음대로, 은혜로움은 은혜로움으로 각자의 고유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이 둘을 흑백논리로 편 가르기를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은 아닐까 하는 촌스러운 생각을 말입니다. 휘저음을 당한 교우들은 나름 위로하고 소그룹을 마치려고 하는 데 참여한 지체 한 명이 이렇게 일갈하며 제가 대신해야 일을 해주어 굳이 수고하지 않아도 되는 감사함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너무 은혜로운 곳에서만 있었기에 휘저음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휘저음을 경험하고 난 뒤에 나름 깨달은 것은 휘저음을 전제한 은혜가 진짜 은혜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 지체의 고백이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요, 설득력이 있는 술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주의 말씀을 통한 가슴의 후벼 팜이 없는 은혜가 진짜 은혜일까? 저 역시 그렇다고 말할 자신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극히 개인적인 소회이지만 유기성 목사의 설교와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소회는 그가 전하는 것은 정말로 거의 틀린 말을 찾을 수가 없는 메시지인데 난 왜 그의 설교에서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일까? 아이러니입니다. 반면, 김기석 목사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불편하고 많이 아프고 쓰린데 왜 난 그의 글과 설교를 받을 때마다 벅찬 은혜를 받는 것일까? 수수께끼입니다. 그래서 착념했습니다. 그냥 좋은 곳으로 기울기로. 그래서 그런지 서재에 직접 구입한 김 목사의 책들은 제 눈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선물 받은 유 목사의 몇 안 되는 책은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