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이 되었는데도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텅 빈 하늘 밑 불빛들 켜져 가면 옛사랑 그 이름 아껴 불러보네 찬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우다 후회가 또 화가 나 눈물이 흐르네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인가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흰 눈 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옛사랑 생각에 그 길 찾아가지.” 신학을 하기 전, 이문세 노래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의 노래에 담긴 가사들이 귀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옛사랑’ 이라는 이 노래도 특히 기억에 남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사람이 짧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일들이 많아야 오십보백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삶이 왜 이리도 빡빡하고, 숨 가쁜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것들은 좋은 것대로, 나빴던 것들은 또 나빴던 대로 내 삶의 교훈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조금은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34년 만에 반가운 얼굴들과 해후했습니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교육전도사로 부임한 영등포성결교회는 처녀 사역지로 저에게는 모험의 장소였고, 낯설고 생경한 장소였지만 정말로 열심을 다해 섬긴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청년회 담당 교육전도사로 교회에 부임하자마자 만난 황당함은 당시 젊은 청년들이 저를 거부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신학교 2학년 복학생 신분이었던 저는 제가 부임하기 전, 청년들을 담당하던 교역자가 부목사님이었는데 담당 교역자가 신학교 2학년 신출내기 교육전도사로 강등된 것에 항의하기 위해 임원단들이 담임목사에게 찾아가 거부의 뜻을 전한 사건이었습니다. 항의단은 당시 담임목사께 교만하다는 야단과 함께 그들의 뜻이 수포로 돌아감으로 거사를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저는 졸지에 맡고 있는 청년들에게 부임하자마자 비토 될 뻔한 불쌍한 운명의 주인공이 될 참변을 간신히 면했습니다.(ㅎㅎ) 그 거사를 계획한 역적들 중 한 명은 지금 저와 함께 28년째 같은 이불을 덥고 자도록 하나님이 복수하셨고, 그 나머지 역적 두 명을 지난 주 수요일에 33년 만에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정말로 신앙의 세월 속에서 참으로 녹록하지 않은 영적 고투의 시간들을 보냈을 터인데 부부의 연을 맺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한 지역 교회의 장로로, 권사로 맡은 사역을 잘 감당하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로 세우셔서 지금까지도 선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영향력을 제시하고 있음을 33년 만에 재확인하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33년이 지났는데도 아내에게 언니, 누나로 부르고, 아내는 정겨운 동생들로 호칭하는 바로 어제의 선후배로 다시 뭉침을 보면서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의 이문세 씨의 노랫말처럼 그 그리움들이 한쪽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음은 알파고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는 승전보를 울리고 있는 시대이지만, 결코 기계적 인간의 모습을 한 컴퓨터가 침범할 수 없는 사람이 사람인 것을 알게 해 주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34년 전, 신학교 2학년 복학생으로 나타난 저를 거부했던 저들이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어설프지만 온라인상으로 나누는 대화 속에 종을 신앙의 귀한 멘토로, 혹은 무슨 말을 하면 귀담아 들을 만한 말을 하는 목사로, 그리고 때로는 형부로, 믿을 만한 형으로 인정해 주며 34년 전의 풋풋한 청년의 모습을 견지해 준 당진중앙교회 고경근장로와 이혜경 권사에게 감사하고 저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2017년에도 충만하게 임하기를 34년 전, 교육전도사의 심정으로 중보 해 봅니다. 33년, 참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습니다. 저처럼 저들로 어느 새 주름과 흰 머리가 보이는 것을 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