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나라는 온통 대선이라는 블랙홀에 빠져든 양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예술, 종교에 이르기까지 어떤 팩트가 발생하면 거기에 맞추어 해석하려고 하는 기현상들이 일어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대통령 선거에 관심을 갖는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정권을 통해서 국가공동체의 지도자의 리더십 붕괴가 얼마나 끔찍한 재앙인지를 우리 모두가 눈으로 시청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경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혹자들처럼 다음 정권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대하여 민감하고 있는 것에 반해 실은 별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도찐개찐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기대는 접고 차기 정권의 수장은 다만 상식만이라도 지키는 자였으면 하는 보편적 희망만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8년 전, 교단에서 나와 자유로운 목회지에서 사역을 하다 보니 이제는 교단의 법이 어떤 것이었지? 가물가물해졌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더 정직한 표현으로 말한다면 이제는 관심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지난 주간, 신학교 동기회에서 공동의 문자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 회원이 년차 총회 교단 총무로 출사표를 던졌는데 동기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부탁한다는 그런 유의 문자였습니다. 이번에 교단 총무로 출마하는 친구를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조금 의아한 면이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국의 유력한 교단에서 총무를 하기에 그 친구는 너무 착한 성품의 소유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본적으로 알기로 교단 총무는 상당히 정치적인 자리이기 때문에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되는 그런 자리로 알고 있는데 친구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착한 성품을 갖고 있기에 당선이 되도 적지 않게 그 자리를 버텨낼 수 있을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단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된지 이미 오래되었기에 아주 편안하게 친구가 가는 길을 응원하고 또 중보 하겠지만 막상 지인들이 흔히 하는 말대로 정치라는 것이 구정물이 담겨 있는 진원지이기에 그 착하고 착한 친구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내심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바야흐로 출마 선언의 시대입니다. 이미 예견 된 사람들의 출마는 물론 지나가던 소가 비웃을 사람들도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출마를 선언하는 것을 보면서 아연실색하지만, 더불어 그게 정치판의 생리이기에 또 한 번 실소를 보내는 것으로 그칠 수 있지만, 신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며 동문수학했던 친구가 교단의 총무 선거에 뛰어든 것을 보면서 분명 저 친구가 총무에 당선되면 교단 정치를 새롭게 하겠구나 하는 기대감과 더불어 또 한편으로 교회 정치라는 막장 판으로 내모는 것 같아 내심 친구가 가엽기까지 합니다. 지금 모 종편에서 방영되는 ‘썰전’의 패널로 또 다시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작가 유시민씨가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갈파했던 글 하나를 막장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판에 그것도 교단 정치판에 뛰어드는 친구에게 위로와 격려를 표하는 마음으로 선물하고 싶어졌습니다. “인간은 때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불가능한 꿈을 향해 달려간다. 결코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별을 바라보며 가슴 설레는 것처럼 ‘한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에 대한 꿈은 언제든지 사람을 다시 설레게 할 수 있다.”(p,91에서) 친구 목사가 교단 정치라는 거대한 괴물의 담으로 들어가면서 받아야 할 여러 가지의 상처, 영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비인격적 함몰의 가치들을 경험할 터인데 그 때마다 ‘한 사람의 발전이 만인을 자유롭게 하는 발전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이겨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하지만 착한 친구에게 어리광을 부리듯 못내 안타까워 또 한 번 주절거려 봅니다. 친구야, 목사의 최고의 행복은 목양인데 거길 왜 가려고 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