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구독하는 일간 신문에 실린 광고 문구다. 뜻을 곱씹어 보니 참 마음에 와 닿는다. 더 더군다나 이 광고가 실렸을 때, 제천의 새벽 수은주가 영하 17도까지 내려간 날이어서 그런지 그 글이 더 푸근하게 다가왔다. 지난겨울 녘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겨울이다. 그냥 겨울이 아니라 결코 물러설 것 같지 않은 동토의 땅 에 안주한 겨울같이 보인다. 이제 더 이상 누가 청와대의 주인이 되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무력감이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언저리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절망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경제는 트럼펫이나 부르면 딱 좋을 사람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거머쥐고 나서 거의 코마 상태로 가는 것 같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 조국을 천박한 자본주의의 구정물을 먹고 자라나 마치 기괴한 괴물과도 같은 정서를 가진 다른 나라의 한 사람으로 인해 이처럼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먹이 구조 중 가장 약한 존재로 만들어 놓은 일련의 정권 유지자들 때문에 인해 나는 몹시 분노스럽다. 김훈은 오래 전에 쓴 ‘남한산성’의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읊었다. “옛터가 먼 병자년의 겨울을 흔들어 깨워, 나는 세계 악에 짓밟히는 내 약소한 조국의 운명 앞에 무참하였다. 그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지금 내가 남한산성에 갇힌 기분은 왜일까? 지금 대한민국이 380년 전, 남한산성에 갇힌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하나를 보자.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 철학자인 칼 포퍼는 자신의 걸작인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전체주의라는 닫힌 사회와 민주주의라는 열린사회의 분기점은 인간의 비판력을 얼마나 자유롭게 허용하는가? 의 관점에 있다고 지적했는데 근래 내가 사는 땅은 마치 ‘1984’의 빅 브라더에게 감찰당하는 것과 같은 섬뜩함이 있었다니 오싹하다. 블랙리스트라는 용어는 내가 80년에 대학 도서관에서 접하였던 미국 시사 잡지인 ‘타임즈’ 한국어판을 불연 듯 생각나게 한다.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 개재되어 잡지를 들면 당시 군사독재의 검열에 걸려 한 여백이 백지로 남아 있었던 씁쓸함이 지금도 생생하다. 검열 공화국의 그림자가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다시 복기된 아픔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어 닫힌 사회의 전형으로 돌아간 것 같아 심히 유감스럽다. 하나만 더 진솔하게 토로해 보자. 기독교에서 별로 좋은 감정으로 대하지 않는 도올이 이렇게 독설한 적이 있다. “종교가 인간의 상식적 삶을 위한 종교가 되기를 원한다. 종교를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종교가 존재한다는 정직한 명제가 상식이 되기를 염원한다.” 나 또한 도올의 거침없는 행보와 발언에 대하여 때론 심한 거부감을 갖고 바라보는 복음주의권의 심약한 목사이다 보니 어떤 때는 그의 지론에 반대에 설 때도 상당수이다. 그러나 그가 말한 종교가 인간의 상식적 삶을 위한 종교가 되기를 원한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아프지만 이렇게 나만의 색깔로 바꾸면 별 이의가 없다는 점에서 수용한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모스와 같은 흉(凶) 예언자들과는 거리가 먼 대신 아마샤와 같은 길(吉) 예언자들의 말 따르기를 종용하는 이 시대이기에 교회를 서열화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참담함, 인격적으로 오시는 성령을 임의로 인간이 만드는 기괴함, 말씀을 성전 종교와 맘모니즘의 틀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설교 폭력들, 거기에 걸맞게 정치적 헤게모니 집단으로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병들게 하는 일부 종교적 하이어라키즘(Hierarchism)까지 일체의 교회답지 않음에서 벗어날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상식의 교회로 내가 섬기는 교회가 회복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그 교회로 회복하는 것은 오늘 내가 섬기는 교회의 행로이기를 나 또한 간절히 기도한다. 2017년, 내가 서 있는 국가적, 목양적 삶의 정황(Sitz im Leben)은 혹한의 겨울을 지나고 있다. 그렇지만 전술한 신문광고의 글귀처럼 내가 사는 대한민국, 내가 섬기는 조국교회에 봄이 오기를 아니, 봄이 온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에 이 겨울을 이겨나갈 것을 소망해 본다. 왜 그래도 봄은 먼발치에서 서서히 우리에게 오고 있기 때문이다.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