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목사님컬럼] 수요 예배 단신(短信)2024-04-02 13:54
작성자 Level 10

각 교회마다 수요 예배가 무너지고 있다. 작년 12월 초, 사무총회 준비를 위해 사랑의 교회 안성 수양관에 올랐다. 주간 수요일에 근처에 있는 모 장로교회 수요예배에 참석했다가 서글픔이 몰려왔다. 청장년 300여명이 출석하는 우리나라 교회 중에 가장 흔한 이름(즉 유명 브랜드 이름)의 교회였는데, 그 날 예배 참석 인원이 총 9명인 것을 보고 경악했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는데 그 큰 본당에 인원이 적게 모여서 그런지 난방도 하지 않은 채 준비와 예배의 기대감이 전혀 없는 풀 죽은 예배가 드려지는 것을 보면서 아팠다. 목회를 아주 열심히 하는 개척교회 후배 목사 중에 한국교회의 미래를 염려하는 친구가 언젠가 나에게 이렇게 고언(苦言)했다. 


“선배님, 지금 한국교회 수요예배 인원이 20년 뒤 한국교회 주일 낮 예배 인원입니다.” 

이렇게 토로한 후배는 바로 그 20년 뒤 역동적으로 사역할 젊은 목사였기에 그의 아픔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 고백인지를 나는 의심치 않는다. 지금 이대로라면 충분한 개연성이 있는 진단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교회 수요예배 출석인원은 주일 낮 예배 대비 약 30% 수준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담임목사도 별 힘을 쓰지 못하는 힘없는 목회를 하는 것이 분명하다. 수요 예배를 참 강하게 다그치는 편인데도 끄떡도 안하는 신자들이 전 교인 대비 2/3이니 별로 할 말이 없다. 이런 분위기를 상쇄하기 위해 협박(?)도 때론 하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지만 요지부동인 셈이다. 한 동기 목사는 이런 고육지책을 말했더니 전교인 대비 30%가 수요예배에 나오면 성공(?)한 목회라고 실없는 소리로 위로하지만 참 유감스럽고 답답하다. 헌데 2017년에 들어서자 제 마음에 조금의 위로가 보여 내심 반갑고 감사하다. 언젠가 한 번 안수집사들에게 수요예배 출석의 저조함을 진정성이 있는 울림으로 나무랬다. 조금은 앞서 가야할 교회의 책임 있는 직분자의 예배 태도를 지적했다. 그 일 이후, 충주에서 근무를 하기에 제천에 들어오는 시간이 수요 저녁예배 시간에 도무지 맞출 수가 없어 예배를 포기했던 안수집사 한 분이 조금은 예배 시간에 늦더라도 수요 예배에 참석하는 열심으로 담임목사의 리더십에 순종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교회에 등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래 남자 집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수요예배에 나와 예배자만이 느끼는 감동을 주고 있다. 새로 직분을 맡은 지체들과 이래한 지체들이 수요 예배에 동역자들로 분연히 서고 있다. 


그 중 지체 한 명이 이렇게 말해 주었는데 목사에게는 너무 귀한 힘이 되는 고백이었다. “목사님, 수요예배 시간에 선포되는 말씀은 주일 설교를 다져주는 플러스알파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놓칠 수가 없습니다.” 이 고백이 백번 양보하여 지체가 담임목사에게 힘을 주기 위한 립 서비스라고 해도 수요예배에 또 다른 역동적인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도록 담임목사를 독려하는 선한 말이라고 믿기에 무한 감사하다. 가만히 돌이켜 본다. 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는 공히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주시는 감동의 무게가 다를 수 있고, 사모함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아주 조금의 변화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수요예배에 힘을 쏟고 있는 지체들이 고맙고 또 고맙다. 뉴욕 리디머 교회의 담임목사인 티모시 켈러가 쓴 ‘설교’에서 존 웨슬리와 쌍벽을 이루었던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 조지 휫필드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조지 휫필드가 처음 그의 설교를 출판하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그는 일단 동의를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천둥과 번개를 지면에 담아낼 수 없을 텐데요.” (티모시 켈러의 ‘설교’ p,257.) 읽다가 감동 때문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렇게 독백했다. “수요예배 설교를 준비할 때 천둥과 번개가 담긴 설교를 준비하도록 성령께 더욱 의지해야지.” 세인 교회의 수요 예배가 천둥과 번개가 동반된 은혜의 벼락이 쏟아지는 현장이기를 두 손 모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