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목사의 모친 권사님께서 지난 수요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5년 이상 암 투병을 해오시다가 노령의 나이이시기에 극복하지 못하고 생을 마치셨습니다. 친구의 모친은 한 교회에서 신실하게 사역하시다가 84세의 일기로 이 땅에 주의 종 아들을 열매로 남긴 후, 평소 그리고 또 그리던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중학교 동기동창이기도 한 친구와는 각별한 사이이기에 금요일 장지까지 함께 가서 어머니를 잃은 친구를 위로했습니다. 섭씨 35도에 가까운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매장을 하였기에 저 역시 오랜만에 하관 예배에 참석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하관예배가 끝나고 차근차근 하관 절차가 이어졌습니다. 관을 덮은 횡대 중 덮이지 않은 한 쪽 면에 勸士(권사)임을 알리는 ‘권할 勸’자가 비스듬히 보였습니다. 상주가 마지막 남은 횡대를 덮고, 헌화가 이어졌습니다. 유족들의 흐느낌 속에 취토가 이루어졌고, 봉분 인부들이 이후 인정사정 보지 않고 흙으로 관을 덮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는 것처럼 봉분을 세우기에 앞서 제일 중요한 작업은 흙으로 관을 덮고 다지는 작업입니다. 빗물이 스며드는 것을 더디게 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입니다. 저 역시 그 동안 화장 예배에 익숙해져 있다가 참 오랜만에 하관예배에 참여한 탓에 절친한 친구 어머님의 하관식이기도 했지만 언제든지 매장 장례의 백미는 하관예배이기에 또 다시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목사로 사역하면서 참 많은 장례식을 인도했습니다. 이 땅에서 주님의 뜻대로 온전히 살다가 하나님의 적절한 부름에 응답한 교우들의 기쁜 장례식을 비롯하여 자살로 생을 마친 정말로 인도하기 어렵고 싫은 장례식까지 여러 경우의 장례를 인도하면서 신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한 목양의 배움들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부유한 가정은 관을 정말로 잘 씁니다. 잘 썩지 않는 비싼 관을 사용합니다. 어머님의 경우, 장례지도사가 시신을 유족들에게 위로가 되도록 가장 예쁘고 아름답게 화장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관속에는 각종 꽃들로 수놓은 시신도 보았습니다. 이번에 친구 어머님도 그렇게 모셨지만 장지까지 운구하는 운구차량을 리무진으로 모시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각 가정의 경제적인 사정과 예에 따라 그렇게 고인들을 극진히 예우하는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목사의 눈으로 볼 때 일련의 이런 모든 일들은 헛헛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극진히 모신 친구 어머님의 시신이 담긴 관은 하관식이 끝나자마자 흙으로 덮이기 시작했고, 봉분을 만드는 인부들에 의해 인정사정없이 짓밟혔습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었고, 유족들 중 그 누구도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처사였기 때문입니다.
2주 전, 진해 교회에서 종이 세운 장로님이 소천하셨다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헌데 그 장로님은 정식적인 장례식을 치르지 못했습니다. 골육종으로 인해 투병 생활하는 동안 타인의 피를 수혈 받으며 사셨던 장로님은 소천에 앞서 타인들과 하나님께 받은바 사랑이 너무 커 그 은혜를 장로로 갚고 남기기 위해 시신을 해부용으로 기증하셨기 때문입니다. 해부용으로 밀려 있는 시신들이 많기에 순차적으로 해부될 때까지 정식 장례를 미룰 수밖에 없기에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전언을 받았습니다. 장로로 이 땅을 살면서 그 마지막이 너무나 아름다운 결론을 맺으신 장로님의 소식을 들으며, 권사로 한 교회를 섬기며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간 친구의 모친의 하관식을 보면서, 주체할 수 없는 돈방석에 앉아 각종 탐욕의 탐욕을 경험하다가 말년 죽음을 기다리는 모 인사의 마지막을 보면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오늘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최고의 복임을 다시금 각인하게 되는 교훈을 한 주간 진하게 경험했습니다. 친구 모친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지만 지금도 못난 막내아들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에서 중보하고 계시는 어머님이 사무치게 보고 싶은 것은 왜일까요?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