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대전을 방문했습니다. 수정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일전에 말씀드린 대로 두 분이 우리 교회를 다녀간 이후, 후배들이 목숨을 걸고 타고 온 봉고차를 본 뒤 내내 마음이 쓰였기에 교우들에게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 목회자가 설교 중에 사역 현장에서 자꾸만 부담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당신은 그 부분의 은사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분의 말을 동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생각을 계속하게 하신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우리 교회 피선교지이기에 더욱 더 신경이 쓰여 중보를 늦추지 않고 있었는데 설교를 한 뒤, 청년 한 명이 수정교회 봉고차 타이어를 본인이 바꾸면 안 되겠느냐는 전언이 왔습니다. 청년으로부터 온 그 전언은 정말로 목사로서 보람을 느끼게 하는 이타적 신앙의 본보기였습니다. 또 다른 지체 한 명은 30만 km를 주행한 차에 타이어를 바꾸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하고 기도 중에 중고차를 구입할 수만 있다면 그 할부금을 부담하겠다는 사랑의 메시지를 종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 지체의 말 중에 가슴에 담은 것이 있습니다. 정말로 마음으로는 새 차를 헌물하고 싶은 데 그럴 수 없는 본인의 경제적인 안타까움을 토로해 준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지체의 나눔 실천이 신실한 진정성이 담보된 보배합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더불어 선교위원회 모임을 통해 선교위원들 역시 선교회에서 역시 조금이라도 의지를 표명하자는 결의를 해 주어, 중고차량 구입을 위한 씨앗들이 확보된 상태였기에 용기를 갖고 후배 목사 부부를 만났습니다.
이야기 중에 대전 수정 교회를 위한 제천세인 지체들의 이런 사랑을 전하고, 차량 구입을 위한 이모저모의 일들을 전하는 순간, 수정 교회 목사님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눈물은 오늘의 교회 중에도 이런 사랑의 기적을 나누는 교회가 있다는 것에 대한 감격의 눈물임은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되는 신뢰의 눈물이었습니다. 동시에 이론으로 말할 수 없는 받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담보된 복합적인 심정의 눈물이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선배로서 감사한 것은 정말, 어려운 교회인데 사랑의 그루터기들이 심어져 그것이 움트는 것을 들은 목사님 부부가 섬기는 교회의 지체들에게도 이 사랑을 전해 최선의 땀을 흘리겠다는 반응을 보여 준 다시 말해 받는 데 익숙하지 않으려는 후배들의 그 정신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수정교회가 어느 정도로 어려운지에 대하여 후배들은 내색하지 않지만 선배는 짐작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받는 삶이 어찌 보면 교회를 살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일 텐데,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목양의 현장에서 최선의 목회를 하여 교회다운 교회를 만드는 것이 이 사랑의 빚을 갚는 일임을 후배 부부가 저에게 마음으로 확인시켜 주어 감동의 교제를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물질의 나눔은 순교적 신앙 없이는 불가능한 때가 되었음을 종은 압니다. 그럼에도 순교적 영성을 보여준 지체의 결단과 청년 신앙은 청년 신앙으로 머문다는 것을 보기 좋게 역전시켜준 세인의 딸에게 담임목사는 후배 목사를 대신하여 큰 박수와 감사를 전합니다. 지난 주에 이어 연이어 본회퍼 목사의 말로 글을 마치는 것은 목사로서 큰 기쁨이요, 보람입니다.
“교회는 타인을 위해 존재할 때만 교회이다.”
후배 목사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아침 이슬 같았습니다. 그 눈물이 아름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