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에 1992년 4월 30일 청주 서문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당시 제가 속해 있었던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단독목회 2년이라는 조항이 목사 안수 자격 조건에 있었기에 아내와 함께 경남 밀양군에 소재해 있었던 한 농촌교회에 부임하여 담임전도사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이 사역을 통해 안수 조건을 충족해 32세의 비교적 어린 나이에 목사로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목사로 안수를 받고 난 그 다음 주일, 섬기던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인도한 후 처음 손을 들어 축도를 할 때의 감흥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을 느끼지 못하는 두려움과 부담감과 동시에 영적인 감동이었습니다. 두려움이라 함은 목사라는 성직에 부끄럽지 않은 사역자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반응이고, 부담감이라 함은 주께서 위탁하신 양들에게 어떻게 해야 양질의 좋은 꼴을 먹일 수 있을까에 대한 무게감이었고, 감동이라 함은 결코 목사로서의 자격이 없는 자에게 성역을 맡기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이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시작한 목사로서의 성역을 감당한지가 금년 들어 24년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청주 서문교회에서 109번째로 안수를 받는 순간, 안수위원이셨던 서울 중앙성결교회 섬기셨던 고 이만신 목사님께서 마이크를 들고 안수 기도를 하셨습니다. “내가 이강덕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의 성례를 집례 할 권한과 축도권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안수하며 허락하노라” 그 날, 마른 장작 나무 같은 종에게 목사의 직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세 가지를 약속드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하나님,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목사가 되겠습니다. 하나님, 어떤 경우에도 정치하는 목사가 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무슨 일이 있어도 물질에 제 영혼을 파는 목사가 되지 않겠습니다.” 24년이 지난 지금 뒤돌아보면 몸서리치게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족한 것투성이의 목사일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한 가지의 마음은 그 때 드렸던 그 초심의 마음을 은퇴하는 날까지 부족한 대로 하나님께 드리며 퇴장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4월 5일에 까마득한 후배이자 우리 교회 지체의 자제인 최종선 전도사가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다고 전언을 받았습니다. 작금의 이 땅에서 목사로 산다는 것은 제가 안수를 받던 때에 비해 더 고달프고 힘들고 외로운 길입니다. 그러기에 정말로 순교적인 믿음이 없이 도무지 갈 수 없는 길이 목사의 길입니다. 그러기에 목사 안수 24년 선배가 후배에게 목양 칼럼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축하가 아니라 부담 중의 부담의 말이 될 것 같습니다. 그게 후배를 사랑하는 선배의 진심어린 권면이기에 말입니다. “최종선 목사, 안수를 받는 날 하나님께 드리는 약속을 은퇴하는 날까지 가지고 가는 목사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당부한다. 위탁된 양을 위해 울 수 있는 목사, 정치와는 담쌓는 목사, 그리고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더라도 맘몬에게 영혼을 팔지 않는 목사가 되기를 바란다.” 저는 이 당부를 제 아들이 목사 안수를 받는 날에도 똑같이 전해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길을 가는 목사가 얻는 은혜는 성공이 아니라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최종선 전도사에서 최종선 목사로의 가는 길에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기를 선배 목사가 두 손 모아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