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바른 교회 아카데미 지역 세미나에 차준희 교수를 섭외해서 사역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당시 차 교수의 세미나 강의 내용이 현장 목회자들이 가장 많이 설교 본문으로 삼는 구약 텍스트가 무엇인지를 발표하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니 제일 많이 인용된 구약 성경은 창세기, 시편, 이사야 정도로 분석된 것을 보았습니다.
사정이 이런데 소 예언서 그것도 구약성경에 유일하게 1장으로 남아 있는 오바댜를 누가 주목하겠는가를 생각하다보면 평신도들이 도대체 오바댜가 무엇이지? 라고 질문할 만합니다.
이렇게 거의 읽지 않는 성경의 사각지대와 같은 오바댜, 목사들조차도 거의 잊고 사는 오바댜를 다음 주간 새벽에 교우들과 특별 새벽기도회 사역을 통해 전체를 살피려고 합니다. 1장 밖에 안 되는 오바댜를 전체라고 표현하니까 조금은 멋쩍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허나 설교를 준비하다가 왜 굳이 1장 밖에 되지 않는 오바댜를 구약의 정경으로 하나님이 삽입하도록 역사하셨을까? 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럽게 풀렸습니다.
필립 브룩스의 말대로 설교는 설교자의 인격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갈파를 전제할 때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예언서 오바댜에 있는 하나님의 신탁을 저의 개인적 영성에 녹여 교우들에게 선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해서 지난 주간은 특별히 하나님께 더 바짝 매달려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본 예언서 설교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번 주간, 아주 생소한 하나님의 종 오바댜가 2,600여 년 전에 하나님께 받아 적은 특별한 계시를 우리 세인 공동체의 것으로 만들어 보려고 최선을 다하는 특별 새벽기도회의 장을 준비하고 열려고 합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특별 새벽기도회는 새벽의 영성으로 훈련 되지 않은 지체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고난주간에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서려고 노력하는 자들에게 영성 훈련 프로그램으로 굳이 표현하자면 특새만큼 좋은 훈련의 장도 없을 것입니다. 찬송가 147장의 1절 가사가 이렇습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님 그 십자가에 달릴 때 오 때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나’ 라는 별 볼일이 없는 존재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자라면 적어도 고난주간에는 십자가의 감격이 흘러넘치던 골고다의 현장에 함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기가 세인 교회 특별 새벽기도회의 현장이기를 기대하고 이번 주간, 새벽을 깨우는 한 주간이 되기를 담임목사가 소망해 봅니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 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