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겨울 어느 날, 1층 교육관에 일찍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는 데 단아한 교복을 입고 피아노에 앉아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연주하는 예쁜 여학생이 보였습니다. 한 동안 멍하게 그녀를 쳐다보면서 연주를 듣고 이후 저는 그녀에게 첫사랑의 포로가 되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출신 교회 학생회 예배 반주를 했던 1년 후배는 저의 아릿하고 예뻤던 첫 사랑의 추억을 남겨 주었습니다. 하필이면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감정이 드는 바람에 대학 입학에 상당한(?) 차질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동생은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순결한 사랑의 흔적입니다.
가끔 ‘첫사랑’ 이라는 명사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고 연상되는 많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가 순수함, 순결함, 깨끗함 등등의 관련어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예배당에 조금 일찍 나가보니 근래 아주 예쁘게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자매님이 제일 먼저 자리에 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윽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가장 경건한 모습의 조신함으로 조아린 무릎 위에 올려놓고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하는 아름다움이 들어왔습니다. 자매의 예배 준비를 보며 순간, 신비로운 거룩함을 물씬 풍기는 기쁨이 저에게 밀려왔습니다. 종이 이렇게 기쁜데 하나님은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실까 생각하니 영적 보람이 저에게 임했습니다. 자매는 지금 하나님과 속 깊은 그리고 짜릿한 주님과의 첫사랑을 경험하는 중입니다. 처음 시작한 크로스웨이 성경공부를 통해 주님의 비밀을 조금씩 알아 가는 행복을 토로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은혜를 경험하고 있음도 나누었습니다. 자매의 첫사랑이 목사로서 자랑스럽지만 또한 어느 새 습관화되어 있는 저의 일련의 목양 군더더기 때문에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래, 나도 주님과의 전인격적인 만남을 체험하고 시작된 첫사랑이 저랬었는데...”
예배당에 들어서면서 왁자지껄한 수다로 예배당을 채우게 된 나,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의 처소에 들어서면서 하나님이 부르신 것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이 무디어진 나, 하나님 앞에서라는 ‘코람데오’ 의 엄숙함을 잊은 나, 하나님께 예배함이 우선순위가 아닌 교제 중심의 신앙생활로 굳어진 나, 머리를 부복하고 엎드릴 때마다 주님이 나를 만져주시는 영적 터치함에 심쿵했던 것을 잊어버린 나, 그것이 오늘 내 자화상인 것 같아 자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너무 행복했고 또 행복했습니다.
담임목사 셀에서 성장하고 있는 공동체 지체 중 한 명이 어느 날, 이런 나눔을 함께 전언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주일 예배가 시작되어 부르는 ‘주님의 보혈 의지하는 맘으로 보좌 앞에 지금 가오니 날 씻기소서 사모하는 영혼을 받아주소서’ 찬양의 고백을 드릴 때 너무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나 같은 것이 주일 예배자로 설 수 있음에 눈물이 납니다.”
첫사랑을 경험했고 또 계속 경험하고 있는 자의 고백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종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던 나눔이었습니다. 얼마 전, 그 지체는 너무 예쁜 이런 글을 썼습니다.
“해가 짧아져 퇴근길이 벌써 어둑어둑하다. 오늘 시골길로 걸어 퇴근하며 하나님과 대화형식의 기도를 하며 왔다. ‘초생 달이 예쁘네요. 하나님! 오늘 이 시간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 차가 시골길에서 과속을 하네요. 안전운전 하게 해주셔서 사고 나지 않게 해주세요. 가을걷이가 한창이네요. 수확의 풍요로움에 감사하고, 이 향긋한 시골냄새에 감사하고, 가을단풍에 감사하고, 걸어감에 건강주심에 감사하고...’ 이렇게 시작된 기도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오늘 속상했던 얘기, 요즘 가장 많이 기도하는 얘기, 오늘은 무엇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지 등등 조금씩 조금씩 기도의 맛을 더 봐야겠다.”
첫사랑에 푹 빠져 있는 지체들을 섬기고 있는 이 목사는 그래서 덩달아 행복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첫사랑의 순결함을 주었던 고향 교회 후배가 행복하기를 화살기도해 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