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목사로 살아가지만 뼛속까지 한국 사람인 나 역시 일본이라는 나라를 말하면 뭔가 잘 안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질적인 무언가가 분명히 있습니다. 몇 몇 선교적 마인드가 투철한 교회 지도자들이 일본을 품고 기도하는 것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반대를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처럼 손을 들고 지지하는 편이 아닌 것을 보면 분명히 저 역시 반일본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해서 대일본 전 스포츠 경기를 하면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더 반드시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고,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지속적인 경거망동과 침탈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일본이 지진이라도 날 때 그것은 하나님이 벌하는 자업자득이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적대적인 마음이 나도 모르게 깊은 기저 속에 있는 것 같아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래도 목사가 이런 비성서적인 죄는 짓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을 곧바로 곧추 세우며 다시 되뇌며 새기기는 합니다만.(ㅎㅎ) 이상의 심리적인 것들은 어찌 보면 다른 여타 우리나라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아마 학습되어 있는 일본에 대한 저의 간접적 열등의식의 표출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맞아 죽을 각오로 한 마디를 해야 하겠습니다. 십여 년 전, 지인 선교사를 지원하기 위해 겸사겸사 일본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소회들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소름끼치도록 무섭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본이 자랑하는 신칸센을 타고 지방에서 도쿄로 이동하던 시간이 아침이었는데, 거의 모든 객석에 앉아 있는 출근하는 일본 사람들의 손에는 신문과 책들이 들려 있는 것을 보면서, 관광객들이 탄 버스가 호텔 문을 나설 때까지 직원들이 손을 흔들고 어깨를 90° 각도로 숙이며 배웅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쿄 디즈니랜드의 그 넓은 주차장에 매표소에서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닌, 맨 가장자리부터 약속이나 한 듯 주차하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가족단위 식구들이 자기가 가져온 도시락을 일사분란하게 오와 열을 맞추어 지정장소에서 식사 하는 것을 보면서, 도쿄 한 복판 사거리와 오거리에서 단 한 번의 차령 경적을 내는 차를 보지 못한 것을 보며, 편의점에서 줄을 잘못 선 사람에게 모두가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는 저들을 보면서, 도로 담벼락 보수 공사를 하는데 거의 일 년이라는 시간동안 공사 기일을 잡고 공사한다는 친구 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싹하게 할 정도의 일본 정신에 부러움과 무서움이 교차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일 심각하게 아팠던 소회는 과거의 쓰라린 정치적 측면이 아닌 위에 열거한 일련의 선진 문화적 수준을 과연 우리들이 따라잡을 수 있을까 심각하게 성찰하다가 yes 보다는 no 에 더 가까운 우라 나라의 수준을 느꼈던 점이었습니다. 이번에 일본에서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한 것을 보며 신문에서 ‘왜 우리는?’ 이라는 볼멘소리의 기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실린 것을 인터넷 뉴스를 통해 보았습니다. 철저한 분석에 기초한 부러움의 표(表)라기보다는 열등한 우리들의 모습을 질타하는 듯한 멘트 성 기사로 신문이 도배를 한 것 같아 못내 씁쓸함을 느꼈지만 목사로서 일본이 노벨상을 타는 데 우리는 왜? 라는 씁쓸함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다가 머문 생각이 이것이었습니다. ‘기초 체력의 부실’ 일본과 매번 싸워 이기는 스포츠 영역에서의 분석이 아닌 앞서 말한 제반 모든 분야에서의 선진 국민으로 가는 기초 체력의 헛헛함을 갖고는 도저히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성급한 진단이 저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합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는데 노벨상 수상은 만시지탄이고 제발 기초 체력만이라도 지금이라도 키워나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저 역시, 일본한테 지는 것은 정말 싫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