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도사, 첫 달 사례금이다.”
당시는 담임목사께서 부교역자들의 월급을 일일이 손수 교역자 결산 시간에 건네주던 시대였습니다. 아내에게 첫 월급의 봉투를 전해주자 아내가 감사함으로 받아들인 첫 월급 봉투에는 330,000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본봉 300,000원, 심방교통비 30,000원
당시에는 첫 열매의 감각이 없었던 터라 아내는 십일조를 비롯한 제반 헌금을 미리 떼어 놓고, 남은 물질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빠듯한 월급으로 아내가 어떻게 생활을 했는지 기억을 지금 더듬어보면 말 그대로 기적이었습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이어서 아마도 그냥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화생활도 했습니다.(ㅎㅎ) 한 달에 한 번 월요일 광안리 바닷가에 가서 아내와 함께 먹는 외식 짜장면과 커피 한 잔, 매 달 한 장씩 구입하던 노찾사의 LP 레코드, 사택 근처에서 구입하던 몇 개의 사과는 소박한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행복한 시절입니다. 그렇게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주간에 아들이 추석 연휴를 맞이해서 제천에 와 봉투 하나를 내 밀었습니다. 첫 월급을 탔다고 내민 월급 품이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맛있는 것 사 드십시오.”
사역지로 나가던 날, 경제적으로 무조건 독립하라는 아버지의 엄명도 받았고, 내년에 대학원 입학 시부터 본인이 학비를 충당해야 하고 더불어 생활비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교육 전도사의 월급을 갖고 이 모든 일을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아마도 아들은 나름 초비상 상태로 지낼 것이 불을 보듯 뻔한 데 부모에게 내민 월급 품이 얼마나 큰마음을 먹어야 했을까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일찍이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진정한 회심의 세 가지 조건으로 내 건 머리의 회심, 가슴의 회심과 더불어 돈지갑의 회심을 첨가시켰던 것을 저는 개인적으로 항상 민감하게 기억하며 사역해 왔습니다. 루터가 돈지갑의 회심이 없는 회심은 가짜라고 단언한 이유는 아마도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을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정수리 한 복판에 심어야 성도의 가장 중요한 영적 측면이 물질적인 정직함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물며 목사로 살아가는 자들이야 말로 두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아들이 땀 흘려 버는 소득의 소중함을 이제부터 더 몸소 깊이 체휼하고, 그렇게 번 소득은 성도들의 또 다른 땀 흘림이 배어 있는 사랑의 물질임을 삶으로 인식하여 단 돈 1원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물질적인 회심을 날마다 경험하는 목회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해 보는 것은 이미 목회의 현장을 살아온 선배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아들이 내민 첫 월급 품을 어떻게 할까? 아내와 함께 아들이 말한 대로 맛있는 것을 찾아서 먹을까? 그렇게 행복한 상상을 하다가 제일 행복한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께 맛있는 것을 대접하기로.
아들이 섬기고 있는 목양의 현장에 기름부음이 넘쳐나기를 두 손 모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