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출신교회에서 함께 뛰놀며 울고 웃었던 오빠, 누나, 형, 동생, 언니들이 강원도 평창에서 다시 뭉쳤습니다. 전국의 목회 현장에서 주의 나라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친 것입니다. 그 동안의 안부와 근황을 묻고 옛 추억도 함께 나누고 모임 장소를 제공한 후배 목사 가정에서 섬기는 송어회로 배도 불리고 마침 이효석 문학관 근처에서 축제가 메밀꽃 축제가 막 끝난 시기라 그곳으로 자리를 옮겨 남아 있는 메밀꽃의 향기와 자태를 즐길 수 있는 호사도 누려보았습니다. 절기로 메밀꽃이 만발할 때 출신교회 목회자 모임이 마침 그 장소에서 열려서 머리털 나서 처음으로 메밀이 한참인 밭에 서 보는 즐감도 경험했는데 그 행복의 여운이 참 오래가는 것은 아마도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이 좋은 연륜이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가지 더, 이번 모임에서 나는 단지 옛사람들과의 만남이라는 단초적인 즐거움만 느낀 것이 아니라 조금은 더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그것은 이효석 문학관 옆에 만발한 메밀밭의 자태를 마음껏 느낀 것입니다. 아주 잠시의 시간, 메밀밭에서 머물렀지만 나는 그곳에서 메밀과 하나 되는 연합되는 그래서 내가 메밀이 되고 메밀이 내가 되는 그런 서정적인 일체를 경험했다고 하면 교우들이 동의할까 싶지만 저는 이 표현이 정직하다고 싶어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바로 그 느낌을 얻었습니다. 이효석은 그의 활동 반경이나 작품 사유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도시적이고 서구적인 분위기를 풍긴다고 문학 평론가들이 논하지만 그의 출세작이 왜 고향을 배경으로 한 ‘메밀꽃 필 무렵’일까를 접근해 볼 때 아마도 효석 자신이 아무리 도시 지향적 삶으로의 발버둥을 쳤다고 하더라도 그의 태생적인 한계가 바로 메밀꽃이 피는 고향의 내음새들이었고 그를 자극하고 뿌리 깊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향수가 메밀이었기 때문이리라는 것으로 결론을 내려도 그리 과장된 일이 아니리라 싶습니다. 같은 맥락일까요? 고향 냄새가 아주 진한 곳에서 고향의 선후배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목사님, 전도사님, 사모님의 호칭이 무망중에 나왔지만 불편했습니다. 도리어 자연스럽게 누나, 동생으로 다가서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워 일부로 옛날 언어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유리창 박살내기 대장이었던 선배, 학생부 교사로 있을 때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다소곳이 봉사하던 여동생, 교회 앞마당에서 농구를 하면 항상 담을 넘어 기왓장을 깨뜨릴 때 당사자의 집이었던 남동생, 철야기도회를 마치고 나면 당시 직장 생활을 하던 누나였기에 포장마차에서 꼼장어를 사달라고 졸랐던 누님, 지금은 어엿한 목사이지만 주일학교 교사를 할 때 콧물 흘리고 있던 개구쟁이 남동생들이 메밀꽃과 비교하여 결코 뒤처지지 않는 고향의 진한 향수를 전해 주었습니다. 고향은 언제나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고향이 있어 행복하다는 말은 그래서 진정성이 있는 고백입니다. 고향 사람들은 언제 보아도 어제 헤어진 사람들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회귀본능이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향 교회에서 신앙의 훈련을 받고 지금은 아름다운 주의 종들로 귀한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선후배들이 있어 감사했습니다. 모두가 건강한 나날이 되기를 두 손 모아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