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1호, 여자 1호 남자 1호 오래 전에 존 그레이가 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으면서 부부생활에 적지 않은 도움을 얻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거의 대부분 모든 면에서 이질적인 면을 갖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심리적인 차이로 인해 물리적인 힘의 세기나 방법으로 한 쪽이 편입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인격을 인정하고 쌍방의 차이를 인격적으로 보듬어 주는 과정만이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룰 수 있음을 배웠던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에는 여성적인 세밀함을 가진 남자 1호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여성성(?)이 있는 남자 1호입니다. 남자 1호는 일단은 섬세합니다. 더불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빈틈이 발견되지 않도록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옆에서 지켜보면 꼼꼼하기까지 합니다. 때때로 지인들을 위해 내놓는 손수 마련한 음식들은 아내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감탄을 자아냅니다. 가정적인 따뜻함까지 있어서 남자 1호는 아들들에게 권위적인 것보다는 품음의 부성애로 다가섭니다. 무엇보다도 아내 사랑하기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일견 사석에서 남자 1호의 아내가 이렇게 행복을 노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 인생의 최고의 복은 ‘신 씨 집안으로 시집온 것이에요.’ 그 따뜻한 남자 1호는 신명식 집사입니다.
여자 1호 저는 개인적으로 결혼 전에 이상형의 여자를 말하라고 하면 보호 본능을 느끼게 해 주는 여자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아마도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웬만한 남자들의 로망 중에 하나는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여자는 연약해 보이는 것이 매력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연약해 보이지만 엄습하지 못할 남성성의 카리스마가 있는 여성을 볼 때 또 다른 매력을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이 아닌 삶으로 보호자만이 갖고 있는 카리스마적인 아름다움을 보여 준 여자 1호가 있습니다. 여자 1호는 어려서 아빠를 잃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녀에게 그 상황은 참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곱게 자라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홀로된 엄마의 남모를 외로움을 묵묵히 옆에서 아름다운 상록수처럼 버티고 서 있어줌으로 그 자체로 엄마에게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극단의 비약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 1호는 때로는 엄마의 보호자였고, 바울 같은 모습으로 있는 엄마의 영적인 브리스길라였습니다. 지금은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감당하고 교회에서는 귀하게 달란트로 봉사하고 그래서 오뚝이처럼 꿋꿋한 삶을 승리로 승화시켜가고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지난 주에 여자 1호는 엄마가 타고 다니는 험한 승용차가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사랑을 담아 오빠와 함께 힘을 모아 엄마에게 안전하고 새로운 승용차를 선물했습니다. 오누이가 함께 엄마에게 사랑의 승용차 선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어느 때보다 감격스럽고 또한 기뻐했습니다. 엄마의 옆에서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보호자처럼, 때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런 딸로 귀하게 서 준 여자 1호는 이명화 청년입니다. 세인공동체가 아름다운 것은 바로 남자 1호, 여자 1호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길에 시온의 대로가 열려지기를 담임목사는 마음껏 강복(降福)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