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다.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다.”
그러자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또 다른 환자 한 명이 그에게 다가가서 다소곳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 같은 아들을 둔 적이 없느니라.”
많이 회자되는 유머이지만 이 정도의 정신병자들의 이야기는 그래도 이제는 애교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작금에 같은 하늘에 멀쩡하게 살고 있는 자들 중에 이런 정신병자들보다 더 심각한 결코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정신병자들이 너무 많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 (중략)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을 흘릴 때 함께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은 모두 다 백정”이라고 지난 주간 말한 현직 목사를 두고 말이 참 많은데 같은 목사로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 차원에서 해석을 해도 한 가지 말 밖에 나오지 않는 유감이 있습니다.
정신병자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는 강인규 교수의 ‘망가뜨린 것, 모른 척 한 것, 바꿔야 할 것’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가 책에서 일갈한 한국사회에 대한 진단 중에 뼛속까지 새겨지는 교훈이 하나 기억에 있습니다.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돈 없어도 공부할 수 있는 세상,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차별 없이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100%, 1,000% 동의하는 말입니다.
대학의 현재 자화상은 대한민국의 미래의 그림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지금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대학은 다음의 말로 대변된다고 강 교수가 지적을 합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
또 하나 결과론적으로 대학생들로 하여금 어렵게 들어간 대학에서 전공을 공부하는대신 아르바이트나 취업 준비에 매달리게 하는 낭비하게 하는 대학이 오늘 우리나라의 대학의 현재 얼굴이라고 지적합니다.
사정이 이런 대도 지난 주 지방선거에 나온 한 분은 “대학등록금이 반값으로 줄이면 그 전에 졸업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다.” 라고 말하며 또 한 번 가난한 대학생들에게 대못을 박는 일이 자행했습니다.
정신병자 수준입니다.
가뜩이나 본인의 사적인 일탈로 인해 한국교회의 지탄의 대명사처럼 떠오른 한 분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본인이 시무했던 직전 미국 교회에 가서 얼마 전 정신병 수준의 대학 등록금을 진단한 그 분의 아들이 말한 한국 국민들은 미개한 백성이라고 말한 유아적인 발상을 그대로 부합하여 손뼉을 맞추며 그 말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서 본인으로 인해 불붙은 교회 핍박에 기름을 부은 한 사람이 뉴스의 메인을 장식했습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정신병자와 같은 레벨입니다.
가끔은 아프지만 이런 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나름 깊이 성찰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받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냥 기본만이라도 하자는 교훈입니다.
잘 하려고 하지도 말고, 뭔가 뛰어난 일을 하려고도 하지도 말고, 그냥 기본만 하자는 역발상의 도전 말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조국에 정신병자들이 더 이상은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가 정신 병동이라는 공격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목사들이 제발 그 선봉에 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목사가 정신병자들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정신병자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키리에 엘레이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