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어린이주일, 어버이주일, 교사주일까지 함께 합쳐서 11일 주일에 전교인 야외예배로 대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시기인데 관광지를 찾아나서는 것도 같이 아픔을 공감하는 것에 반하기도 해서 자체적으로 가정의 달 행사를 권사님의 농장에서 소박하게 진행하려고 했는데 이것 역시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한 주간 순연하게 되었습니다. 11일 주일에 상당수의 비가 전국적으로 온다는 예보 때문입니다. 정말로 아쉬운 것은 교회를 개척한 이후 야외 행사를 하는 날에는 공교롭게 비가 내리는 경우가 많아 행사에 지장을 주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화창한 날씨 가운데 행사를 치렀으면 하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못내 날씨가 원망스러울 때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오죽하면 교회 지체 한 명이 저에게 농을 던지기 까지 했습니다. “목사님은 비의 남자에요. 비를 몰고 다니잖아요. 행사만 하면 이렇게 비가 내리니 말이에요.” 아마도 지체는 목사님의 기도로 비가 내리지 않게 해보라는 무언의 압력이자 애교 섞인 투정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한 번도 저는 교회 행사를 위해 화창한 날씨를 달라고 의도적으로 기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가 아름다운 기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름답지 않은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실 리 만무입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제 스스로의 목회신학적인 기초 때문입니다. 만에 하나 교회 행사를 위하여 비를 내리지 않게 기도한다면 그것은 극단적 이기심의 기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내 교회의 행사만을 위해 비가 내리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은 만에 하나 그 날 반드시 비가 내려야 먹고 사는 그래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우리들의 이웃이 존재하는 한 그 기도는 아주 나쁜 기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비를 내려주소서’라는 기도 역시 별로 좋은 기도가 아님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끔 나도 모르게 무서운 기도를 드리면서도 그 기도가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멘토 목사께서 쓰신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과년한 처녀로 늙어가고 있는 딸자식을 둔 권사께서 이렇게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처자식이 딸리지 않은 홀아비 의사 사위를 주세요.” 이 기도가 응답되기 위해서는 의사를 남편으로 둔 젊은 아내의 급작스런 죽음을 전제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것은 기도가 아니라 죄악이라고. 이 기도를 심지어 자기만의 힘으로 부족함을 느껴 목사에게까지 그 기도를 용감하게 부탁하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는 전언이었습니다. 목사는 무당이 아니고 용한 사람이 아니고 적어도 이런 죄의 공범자가 될 의향이 전혀 없는데도 말입니다. 옛날 어르신들은 이렇게 독백들을 하셨다지요. “비가 내리신다.”고 왜 이렇게 자연현상인 물질명사에게 존칭어를 붙였을까를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머리가 숙여질 정도입니다. 선조들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비는 하늘이 때를 따라 인간에게 주시는 공평한 선물임을. 다음 주로 한 주 야외예배가 순연된 것에 속상해 하지 마십시다. 오늘 비가 내리는 이유는 오늘 비가 꼭 필요한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주일에도 비가 내리려나.(후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