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 한병철 교수께서 쓴‘피로사회’를 아주 의미 있게 읽었습니다. 책에서 한 교수는 포스트모던 시대를‘피로사회’로 정의하면서 그 특징을 여러 가지로 분석한 것 중에 기억에 남는 설명 중에 하나가‘성과사회’로의 해석이었습니다. 온갖 즐비한 오늘의 세속적인 가치들을 보면 오직 성과로 평가받도록 만들어진 이 시대가 얼마나 비극의 시대인지를 고발하는 그의 혜안이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일전에 미국의 경제학자이면서도 후기 산업 자본주의의 폐해를 맹렬히 공격하며 철학적 삶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스콧 니어링의 글을 읽다가 절절하게 공감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한다.” 저는 책에서 바로 이 글을 만나면서 왜 오늘을 사는 백성들에게 인문학적인 소양이 중요한 지를 새삼 느꼈고 그로 인해 나 역시 인문학적인 글 읽기에 관심을 두게 된 동기부여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 오직 성과위주의 능력만으로 혹은 탐욕의 성과만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과학주의라는 우상이 판을 치고 있기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에는 무관심하기에 무감각한 인성으로 사람을 변질시킨 결과 탄생한 세월호라는 괴물에 갇혀 안타깝게 죽어간 우리의 아이들이 탐욕의 노예가 되어 있는 우리 어른들에게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준엄하게 꾸짖는 것 같아 몹시 부끄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내 안의 내적인 공간과 탐욕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외적인 현장에서 괴물들이 판을 치고 있는 이 땅에서 목사로 살아간다는 것 과연 어떤 것일까? 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부끄러웠습니다. 답을 찾아야 하겠는데 녹록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이들의 아픔들을 목도하며 나도 모르게 쌓이는 트라우마를 의도적으로 잊으려고 조금 더 책읽기에 열중했습니다. 소설가 박범신씨가 마치 아마존 여 전사 같다고 극찬한 소설가 정유정 작가가 쓴‘7년의 밤’을 한 주간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여성 작가이기에 더욱 예리하고 민감한 필채로 실타래처럼 얽어 있는 세상의 애증들을 숨 가쁘게 그려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나는 세속적인 가치와 전술한 성과 위주의 평가로 메말라 있는 작금의 시대에 살아남은 자들이 어떻게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나름 그려보는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글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다를 모르는 자가 바다를 얕본다. 바다를 얕보는 자, 바다에 데기 마련이었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목사로서 이 땅을 살아가면서 정말로 가져야 할 요소가 나를 아는 것임을. 내가 어떤 자아를 갖고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떤 교만으로 나를 포장하고 있는지를 낱낱이 드러내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임을. 목사로 이 땅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버겁고 힘든 일인지를 저는 소리가 없었지만 커다란 소리로 욕심과 탐욕으로 뭉개져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어른들에게 가르쳐 주고 떠난 천사 같은 아이들을 통해 다시금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다를 얕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한 자아를 얕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너그럽게 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땅에서 목사로 살고 있기에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