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목사님컬럼] 고난주일 아침에2024-04-01 16:37
작성자 Level 10

“복음의 본질을 깨닫는 것과 우리 전 삶에 미치는 복음의 영향을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다르다.”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서밋 교회의 담임목사인 J.D 그리어 목사가 쓴‘복음 본색’에 나오는 글입니다. 지난 주간 이 책을 읽다가 갑자기 시선을 잠시 멈추었습니다. 옛날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정식 전담 사역을 시작했던 모 교회에서의 부교역자 시기가 다시금 되새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목회 25년 여정 중에 부교역자로 사역한 것은 정확하게 1년에서 1개월 모자라는 그러니까 11개월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목회의 후반전에 들어선 목사로서 뒤돌아보면 제일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이 어찌 보면 부교역자 경력입니다. 제가 이 점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은 부교역자 경력을 조금 많이 경험했으면 여러 가지의 다양한 목양적인 노하우를 더 많이 배웠을 텐데 하는 그런 유감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목사로 사역할 수 있었던 길이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과감히 포기한 것은 부교역자로 생활을 했던 11개월 동안의 심각한 트라우마와 영적인 번-아웃의 아픔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이 분명합니다. 당시 섬겼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으로부터 받은 혹독한(?) 훈련은 다시는 부교역자로 사역하지 않으리라는 마음을 굳어지게 한 결정적인 동기였습니다. 11개월 모셨던 담임목사님은 통상적으로 말하는 목회에 빈틈이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혹여나 실수를 범하면 군대 용어로 곡소리(?) 날 각오를 해야 하는 엄격한 분이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사역을 하는 경우는 다반사였기에 정시 퇴근은 꿈도 못 꾸었습니다. 새벽예배 대타 뛰기는 기본이고 항상 10분 대기조였기에 스탠바이를 해야 했습니다. 집으로 들어가 양발을 벗지 못할 정도로 파김치가 되어 녹다운 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넥타이를 풀지 못하고 탈진이 되어 아내가 억지로 풀어주었던 경우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심방이 주된 업무였기에 하루에 의무적으로 10가정 이상의 심방을 해야 하는 것이 룰 때문에 마지막 가정 심방을 할 때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무적인 업무 수행을 위한 종교적인 립 서비스를 하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요식적인 심방 행위를 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신학교에서 배우고 다짐했던 은혜, 사명감, 헌신 그런 것들은 이미 내 사전에서 사라진 지는 오래였습니다. 그렇게 버틴 11개월을 생각하면 정말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지난 주간 성결교단 목사 안수식이 있었습니다. 직전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해 주던 한 후배가 안수를 받는다고 인사차 전화를 했습니다. 동기들에 비해 늦은 시기에 안수를 받게 되어 나름 많이 흥분도 되고 기대도 되는 눈치였습니다. 전화로 축복을 전하고 앞으로 안수 뒤에 더욱 조여 오는 영적인 부담감을 잘 극복하고 성결교단 목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사역자가 되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자 갑자기 1992년 목사 안수를 받았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안수 후 섬기는 교회에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처음 축도를 했을 때의 그 열정적아고 순결했던 초심이 나에게 있는가? 를 반추해 보았습니다. 결과 나는 목사로서의 본질을 깨닫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산 반 쪽짜리 목사가 된 것 같아 못내 하나님께 죄송스러웠습니다.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이번 주간, 그러기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이 해 봅니다. 깨닫는 목사로 만족하지 않고 그리어 목사의 표현대로 복음의 영향을 미치는 목사가 되기를 몸부림치기로.

은혜가 밀려오는 고난주일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