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목사님컬럼] 곰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2024-04-01 16:35
작성자 Level 10

금요일,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날입니다. 주일 사역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허나 이번에는 예기치 않게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저에게는 큰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유는 주초에 오세아니아 선교회 임원회가 서울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 교회에서 일정이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회의를 마치고 올라간 김에 모교에 들려 아들을 픽업해서 제천으로 내려오며 모처럼 아들과 긴 시간 여행하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같은 길을 가는 아들과의 만남과 대화가 아들이 제대한 이후에는 더 농익고 있어 감사한 부스러기 은혜를 근래 경험합니다. 내려오는 길이 저녁 식사 때라 여주 휴게소에 들려 끼니를 때우는 데 아들이 갑자기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엄마가 파자 좋아하신 데 사다가 드릴까요?”
“어, 응 그래. 그렇게 하자.”
아들의 말에 얼떨결에 동의를 하고 났는데 왠지 마음이 짠했습니다. 아내를 위해 남편은 전혀 생각지 않은 것을 엄마를 위하는 아들에게 한 방 먹은 기분 좋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피자 창구로 갔는데 아뿔싸, 창구가 없어진지 이미 오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주저 없이 저를 이윽고 베이커리 창구로 데리고 갔습니다. 피자가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빵이라도 사 가자는 의도였습니다. 아들이 또 저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아버지, 엄마가 좋아하는 빵, 골라보세요.”
순간 노래졌습니다. 25년을 같이 살았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고르라는 데에 백지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아내가 좋아하는 빵이 무엇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저하는 저에게 와서 아들이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아버지, 조금 너무 하시는 것 아니에요. 어떻게 엄마가 좋아하는 빵을 몰라요?”
아들이 주섬주섬 몇 가지의 빵을 골라 계산을 했습니다. 그리고 던진 아들의 한 마디는 그날 저를 그로기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아버지, 빵은 보이는데 사탕이 안 보이니까 가는 길에 마트에 들리세요. 사탕 사야 되요.”
사탕이라는 말에 그날이 흔히 말하는 화이트데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난 2월 14일 아내가 저에게“오늘이 밸런타인데이래요. 마음으로 초콜릿 줄게요.”라는 말에 퉁명스럽게“오늘이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이야”라고 맞받아친 무뚝뚝한 남편에 비해 엄마를 챙기는 아들의 따뜻한 엄마 사랑을 보면서 그날 저는 완전히 스타일 구기는 날이 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저에게 무감각, 무감동으로 변질된 소소한 사랑 찾기를 아들을 통해 보면서 벌써 그럴 나이는 아닌 데의 자괴감이 밀려왔습니다. 5년 전, 동기 목사 부부 9쌍이 성지순례를 하는 기간 동안 아내가 뷔페식당에서 귤을 까주면 먹는 저를 보고 경악한 친구들이 그날부터 지금까지 중동 지방에 왕처럼 군림하는 남자들을 베두인이라고 부르는 것에 빗대 저를 베두인이라고 놀려댑니다. 지난 주 금요일, 아들의 엄마 사랑을 보면서 부끄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제 조금 더 나이를 먹어 곰국 끓여놓고 아내가 저를 방치해도 저는 할 말이 없는 무심한 한국 남자의 전형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한국 남자라는 권위 때문에 나도 모르게 무감각해져 가는 자아를 아들을 통해 다시 한 번 돌이키는 망신당한 한 날이었습니다.
한국 남자들이여! 곰국을 덜 먹기 위해서라도 아내에게 잘 합시다. ㅎㅎ.